안녕! 풍전여관 [심재휘]
한 번만이라도 다시 들어가 잠들고 싶은 방이 있다
경포 바닷가 솔숲에
내가 고개를 동쪽으로 돌리면 미리 불어주는 바람 속에
풍전여관이 있다
신고 버렸던 평생의 신발들은 다 기억할 수가 없고
그때그때 신발들의 소리는 조금씩 다 달랐지만
언제나 잊을 수 없는 풍전여관은 늘 맨발의 풍전여관
맹세를 버리지 않는다 해도 돌아올 사랑이 아니라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어서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베이는
어쩌자고 풍전여관은 거기에 있나
젊음은 묵힐 수 없도록 쉬 낡고
추억은 더디 식어서 더욱 오래 쓸쓸하고
그러니까 나는 한때 풍전여관에서 살았던 거다
지금은 없는 풍전여관
- 용서를 배울 만한 시간, 문학동네, 2018
* 얼마전 광화문으로 시작해서 경복궁앞으로 돌아 창경궁 안까지 걷고
온김에 혹시나 학창시절에 잘 드나들었던 '시랑'이 있는지 궁금해
원남동로타리 근처를 맴돌았다.
있을리가 없었겠지만 더디 식는 추억때문에 아쉬운 발걸음을 했다.
신발 벗고 맨발로 들어가 서가에 꽂힌 시집을 오랫동안 읽어도 좋은
그런 찻집이고 가끔 구상,박희진등의 시인들이 시 낭독을 하던 곳,
왜 그때는 시를 낭송하지 않고 낭독을 했을까.
광화문의 인왕다방도 찾을 수 없어 참 아쉽다.
태어난 동네인 동숭동도 참 많이 변해서 대학로라는 이름으로 지금은 없는 고향이 되었다.
나도 한때 종로구에서 살았던 거다.
지금은 없는 나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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