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새로 돋는 풀잎들을 보며[오승강]

JOOFEM 2007. 9. 20. 20:31

 

 
 
 
 

 

새로 돋는 풀잎들을 보며[오승강]
 
 
 
 
누이는 영해로 시집가고 재행길
일가붙이 모여
신랑을 다루며 웃고 들썩일 때
서른 한살 처녀인 고모는
외딴 방에서 그 소리 귓전으로 들으며
쓸쓸히 피 쏟아가며 죽어
우리 식구들 경황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그 죽음을 숨길 때도
오늘처럼 세상은 봄이 와서
주검 아래서도 풀잎 돋는 소리
새들 두런거리는 소리 들렸었고
내 살고 죽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 생각하며
침묵 속으로 또 빠져들 때
세상엔 더 많은 꽃들이 피어
내 더 쉽게 슬퍼지던 것을
또한 무엇엔가 홀린 듯
경황도 없이.
 
 
 
 
 
 
* 세상은 언제나 웃고 떠들며 즐거웁다.
  그러나 외딴 곳에서는 사랑을 잃어 소외되고 쓸쓸히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다.
  아마 내일도 세상은 많은 꽃들이 피고 더 소외되고 더 쓸쓸히 죽어가는 사람이 있을 게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죽어가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하여
  누군가 기도해 주기를 희원한다.
  새로 돋는 풀잎들 조차 쓸쓸한 사랑을 알아주지 않는다.
  잔인한 시츄에이션이다.
 
  일천구백팔십년에 오승강시인이 낸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새로 돋는 풀잎들을 보며'
  깡촌에서 태어나 가난과 병과 억압과 불행속에서 다분히 체념적인 시를 통해
  쓸쓸한 사랑을 노래했던 시인, 오승강.
  다시 깡촌으로 돌아가 초등학교 교사를 한다고 들었는데
  요즘 최근작을 대할 수 없다.
  그의 제자들만이 그를 기억해 주는 것 같다.

 

 

 

 

 

시집은 천이백원이었다.  지금은 누렇게 바랜 종이가 세월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