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강릉 7번 국도[김소연]外

JOOFEM 2009. 6. 28. 20:13

 

 

 

 

 

 

 

 

강릉 7번 국도[김소연]

-잘 닦여진 길 위에서 바다를 보다

 

 

 

 

다음 생애에 여기 다시 오면

걸어들어가요 우리

이 길을 버리고 바다로

넓은 앞치마를 펼치며

누추한 별을 헹구는

나는 파도가 되어

바다 속에 잠긴 오래된

노래가 당신은 되어

 

 

 

 

 

 

7번국도 [김영식]

 

 

 


오늘도

늙은 마술사는 두꺼운 외투 안쪽에서

심심풀이처럼 소도구들을 꺼내놓는다


탁자처럼 네 발로 허공을 쳐들고 있는 오소리를

갑자기 커진 동공에 그렁그렁 어린 새끼들 울음소릴 담고 있는 들고양이를

수의 같은 죽지로 제 주검을 덮고 있는 까투리를


가끔씩 물웅덩일 꺼내

카푸치노처럼 슬쩍 구름을 섞기도 하지만

그건 고도의 계산된 오류


등 굽은 억새의 흰 머리칼을 빗질하던 바람만이

어리둥절한 변사(變死)의 목덜미를 쓸어주고 갈 뿐,

맹목의 질주들이 분주하게 왕래하는

이 노천상가엔 개미새끼조차 조문 오지 않는다


어디에 묻힐까 아스콘 금 사이를 두리번거리다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에 재빨리 엉겨 붙는

붉은 비명 몇 개


모른다

시야가 단절된 저 산모룽일 돌다 갑자기

장의사 같은 마술사의 길고 검은 손이 불쑥

자, 죽은 네 얼굴이야! 흔들며 껄껄거릴지도

 

 

 

 

 

 

7번 국도-燈明을 지나며[이홍섭]

 

 

 

 

 

사랑도 만질 수 있어야 사랑이다.

 

아지랭이

아지랭이

아지랭이

길게 손을 내밀어

햇빛 속 가장 깊은 속살을 만지니

 

그 물컹거림으로

나는 할말을 다 했어라

 

 

 

 

 

 

 

7번 국도 옆으로 가다[박용하]

 

 

 

 

 

11월의 저녁이 찾아왔다
해는 짧다, 읽을 수 없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두께를 헤아릴 수 없는 가을 바람이 흔들린다
불확실하게, 또 1년을 살아야 했다
언제나 다시 살고 싶고
그렇다고 되풀이 살 수 없는 죽음,
밑줄 그을 수 없는 책이 여기에 있다
포기할 수 없는 유한이 거기에 있다
떡갈나무 1만 그루가 어제처럼 서 있는 숲에서
역시, 생은 짧다. 난폭한 사람의 의지가 난해하다
바다는 無의 추억을 확장하고
육체의 슬픈 움직임과 정신의 傾斜
나는 흑백 필름처럼 굽이치는 국도를 사랑했다
그토록 오랜 창백한 밤을 비춘 집어등 불빛과 청어의 유영,
연민이 일어나지 않는 육체를 증오했다
해변을 따라 파도가 피어오르는 허파,
광포한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어 유성의 뿌리를 태양에 안긴다
누가 내 내면을 열어보라, 거대한 태풍의 왕국이리라
궁전 같은 오두막, 커피포트 같은 식탁
11월 저녁 누가 내면에 대해 떠든다면
술도 없이, 깨달음도 없이, 7번 국도를 보여주리라

 

 

 

 

 

그 자장면집[최영철]

 

 

 

 

동해 바다 보리밭 따라 달리며

이쯤에서 자장면 먹고 싶다고

손으로 두드린 옛날 자장면 집 하나 나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좋을까를 생각하다가

그 생각 막 접으려는 순간

거짓말처럼 그런 자장면집 하나 불쑥 나타났다

날 선 보리밭 동해바다가 빚은 자장면

고춧가루 식초 단무지 맛으로 매콤새콤 요동치는

파도가 때기장친 면발이

줄줄이 끝도 없이 올라온다

보리밭 옆 바람이 한번 때기장치고 햇살이 버무린

여기까지 오는 길에 수월찮게 내가 때기장친

면발이 줄줄이 휘늘어진다

파도에 곤두박질치며 세월에 때기장치며

쫄깃쫄깃해진 바닷가 자장면집

 

너 아니? 그게 내 힘줄인 줄

 

 

 

 

* 네비게이션이 없는 나는 어디를 갈라치면 도상연구부터 한다.

몇번도로를 따라가다 몇번도로에서 우회전하고 몇번도로에서 좌회전하고,를 미리 외우고 간다.

동해안을 따라 칠번국도가 있다.

차를 끌고 갈 때 조수석에서는 이것 저것을 볼 수 있겠지만

운전하는 나는 바다의 파도치는 모습을 슬쩍슬쩍 훔쳐볼 뿐이다.

누군가 운전해주는 칠번국도를 한번 달리고도 싶은데 그런 기회가 올지는 알 수 없다.

달리다보면 국도변에는 수타식 자장면집이 더러 있다.

맛있을까, 의심부터 하게 되지만 운이 아주 좋으면 정말 괜찮은 집을 만나기도 한다.

또 더러는 노란 단무지를 안주는 집을 만나기도 한다.

우리가 달리는 인생길에서는 맛있는 자장면집을 만나기도 하고

맛도 없고 노란 단무지도 안주는 집을 만나기도 한다.

파도가 때기장친 면발이 유혹하는 자장면집을 만나러

칠월에는 칠번국도를 달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