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를 걷다[이가을]
길상사를 걷다[이가을]
길상사를 걷는 오후
전화기 너머
오래된 인연을 내려놓아야 하는
여자의 넋두리를 듣는다
길상사는
한때 시인의 연인이 운영했다는 요정이었다
색공지신 와중에도
곳곳 배어있는 치장한 여인들
몰래한 사랑이 보이는 듯 하다
인연 다해 멀어져 간
그 시절 먼이름들
지금 떠나간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치마폭에 적었을 이름도 손길도
멀어 희미한 사랑일 텐데
앉은뱅이 책상서랍
갱지 바랜 편지를 꺼내 읽는다
낭낭하게 흐르는 목소리
대나무 잎잎 흔들리는 소리 파묻던
고통의 이별후에
목표점 다 와버린
인연의 거리, 그런 것
수명이 다한 밧데리처럼
사랑의 유통기한 끝났고
둘 곳 없는 너의 마음 헤맨다
박제할 수도 없지 마음은
오고갔던 마음의 것들
시간 오고갔던 추억들
박물관에도 없지
* 대중가요가사
[미네르바 2009 가을호]
* 길상사는 성북동에 있는 절이지만 원래는 대원각이라는 서울에서 아주 유명한 요정이었다.
요정의 주인은 시인 백석의 애인으로 서로 사랑하였다고 한다.
주인은 나중에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하고 자신의 법명을 따 길상사라는 절이름이 탄생했다고 한다.
또 자신의 애인인 백석의 이름을 따 백석문학상도 만드는데 많은 돈을 투자했다고 한다.
그러니 수명이 다한 밧데리도 아니요, 유통기한이 지난 사랑도 아닌 셈이다.
떠나간 그사람 이름을 잊기는 커녕 그 이름을 기려 문학상까지 만들었으니 그 사랑이 가히 짐작이 간다.
비록 요정을 운영하던 술집 주인이었지만 풍류를 제대로 아는 고급인간(?)이었던 게다.
왠지 언제 한 번 길상사를 걸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야 유통기한 지난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