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길상사를 걷다[이가을]

JOOFEM 2009. 8. 23. 13:34

 

 

 

 

 

 

길상사를 걷다[이가을]

 

 

 

 

길상사를 걷는 오후

전화기 너머

오래된 인연을 내려놓아야 하는

여자의 넋두리를 듣는다

길상사는

한때 시인의 연인이 운영했다는 요정이었다

색공지신 와중에도

곳곳 배어있는 치장한 여인들

몰래한 사랑이 보이는 듯 하다

인연 다해 멀어져 간

그 시절 먼이름들

지금 떠나간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치마폭에 적었을 이름도 손길도

멀어 희미한 사랑일 텐데

앉은뱅이 책상서랍

갱지 바랜 편지를 꺼내 읽는다

낭낭하게 흐르는 목소리

대나무 잎잎 흔들리는 소리 파묻던

고통의 이별후에

목표점 다 와버린

인연의 거리, 그런 것

수명이 다한 밧데리처럼

사랑의 유통기한 끝났고

둘 곳 없는 너의 마음 헤맨다

박제할 수도 없지 마음은

오고갔던 마음의 것들

시간 오고갔던 추억들

박물관에도 없지

 

 

* 대중가요가사

 

 

                               [미네르바 2009 가을호]

 

 

 

 

 

 

 

* 길상사는 성북동에 있는 절이지만 원래는 대원각이라는 서울에서 아주 유명한 요정이었다.

요정의 주인은 시인 백석의 애인으로 서로 사랑하였다고 한다.

주인은 나중에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하고 자신의 법명을 따 길상사라는 절이름이 탄생했다고 한다.

또 자신의 애인인 백석의 이름을 따 백석문학상도 만드는데 많은 돈을 투자했다고 한다.

그러니 수명이 다한 밧데리도 아니요, 유통기한이 지난 사랑도 아닌 셈이다.

떠나간 그사람 이름을 잊기는 커녕 그 이름을 기려 문학상까지 만들었으니 그 사랑이 가히 짐작이 간다.

비록 요정을 운영하던 술집 주인이었지만 풍류를 제대로 아는 고급인간(?)이었던 게다.

왠지 언제 한 번 길상사를 걸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야 유통기한 지난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