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우체부는 더 빨리 걷지 않는다[신현정]
JOOFEM
2009. 10. 26. 21:38
우체부는 더 빨리 걷지 않는다[신현정]
우체부가 지나가니까 들국이 소담하니 핀다
개똥지바퀴가 우는가 하면
어느 담 밑에 늦은 과꽃은 세 번을 벨을 가장해 울기도 한다
거 우체부 아저씨 조금만 빨리 걸으시면 안 되나
늘 그 걸음이다
기쁜 일이거나 슬픈 일이거나 항시 그 걸음이다
아예 자전거는 옆구리에 모시고 다니신다
염소에게 글을 가르치시나
담배 한 대 더 태우고야 엉덩이를 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누나도 기다림이 된 지 오래다
오늘은 유난히 행낭이 불룩하시다
하, 새끼 기러기 몇 마리 목을 내밀고 있다
그렇다고 걸음이 더 빨라지지 않는다
그 걸음으로 저기 저 달까지 무난히 갈 것을 내 믿는다
* 빠른 것을 추구하는 세상이다.
먹는 것조차 빨리 먹어야 해서 패스트푸드점이 많이 생겼다.
사랑도 빨리 전하지 않으면 금방 등을 돌리는지 우체부를 채근한다.
늘 그 걸음이라고 알려줬어도 안달복달 하다가
체념했을까, 아니면 초월했을까,
느린 걸음에도 믿음을 준단다.
어제, 시간이 좀 남아서 소고기장조림을 만들어 보았다.
고기의 핏물을 빼는데 한시간, 끓이는데 한시간, 조림장따위를 넣고 졸이는데 약 한시간.
거의 세시간을 걸려서야 반찬 한가지를 만들 수 있었다.
은근과 끈기로 시간을 죽여야 얻을 것을 얻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체부의 느린 걸음에는 다 철학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행낭이 불룩한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