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에르덴 조 사원에 없다[고형렬]
명동 성당에 내가 있다? 없다? 숨은 그림찾기
나는 에르덴 조 사원에 없다[고형렬]
나는 지금 에르덴 조 사원에 없다
이 문장은 성립하지 않고 시상이 전개되지 않는다
나는 지금 에르덴 조 사원에 없다는 말은
상상할 수 없는 걸 상상하므로 항상 제기되는문제다
그러나 나는 에르덴 조 사원에 있다
증명할 길이 없지만 나는 지금 에르덴 조 사원에 있다
에르덴 조 사원에서 에르덴 조 사원을 생각하거나
나는 지금 에르덴 조 사원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생각하려다가 생각을 못하고 놓친다
그들은 먼 나의 생각 사이를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문장 성립은 둘째 치고 나는 늘 이렇다
나는 이 사유 자체의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에르덴 조 사원에 없다는 말이 꼭 성립돼야 하는가
길을 가면서, 나는 혼자, 그 생각에 골몰한다
분명하게 말해서 나는 지금
에르덴 조 사원이 있는 것처럼 에르덴 조 사원에 있다
그래 에르덴 조 사원에 내가 있다는 것은
에르덴 조 사원이 없다는 것과 진배없다
나에게 에르덴 조 사원이 있다는 것은 에르덴 조 사원이
없다는 것과 동급의 문제로 제기될 수 있다
문제될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 문제가 발생한다
허나 에르덴 조 사원에 없는 내가 너무나 고독하다
음률을 맞추며 고통스러워 하는 자의 행보
왜 나는 에르덴 조 사원에 없는 나를 생각하고 있는가
나는 이 문장을 떠올리면 슬퍼진다
에르덴 조 사원에 없는 나는 어디를 헤매고 있는지
그런데 그대여 왜 그대는 에르덴 조 사원엔 없는 건가
나는 지금, 그 때, 에르덴 조 사원에 머물고 있어라
나는 정처가 없어서 나무처럼 외로워 보인다
나 없는 사막 입구의 산처럼 나는 하늘을 쳐다본다
에르덴 조 사원의 하늘에 나타난 눈부신 구름처럼
나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에르덴 조 사원에 내가 있다, 없다,를 반복하면서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쇼앤 쿡을 하고 있는, 시쳇말로 왔다껌 씹는 소리를 하는 것은
그만큼 시인의 사유가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존재의 있음과 없음을 오가는 것은 어찌보면 소피스트의 궤변처럼 들리지만
사유한다는 것 자체가 고통인 것이다.
시인이 한 편의 시를 짓는다는 것은 사유의 고통에서 출발하며
그 시 안에서 나의 존재가 있음을 확인할 때에야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물론 에르덴 조 사원이 영원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에르덴 조 사원이 존재하는 동안 내가 존재하는 것은
에르덴 조이든 나의 존재이든 영원을 꿈꾸고 소망할 수 있는 것이다.
에르덴 조 사원에 내가 없다면 이것은 슬픈 일이다.
또 에르덴 조 사원이 없어서 내가 그 곳에 존재할 수 없다면 이 또한 슬픈 일이다.
우리의 영혼이 그 곳에 머무르든 혹은 머무르지 않든 사실은 문제될 일이 없다.
그러나 슬픈 일이 발생한다는 것은 외롭기때문이다.
나의 존재를 알아주고 붙잡아주는 정처가 없다면 정말 슬픈 일이고 외로운 일이기때문이다.
시인이 가야할 에르덴 조 사원에 시인의 정처라는 말이 푯말로 세워지기를 바라고
또한 시를 사랑하는 이들이 찾는 에르덴 조 사원에 우리 모두가 존재하거나 존재했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