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왜 왔니[이시하]
우리집에 왜 왔니[이시하]
어둠을 파고 시궁쥐 눈깔 같은 봉숭아 씨앗을 심을래요 모르는 집 창문에 애절히 피어나 모르는 그들을 울게 할래요 봉숭앗빛 뺨을 가진 어린 손톱에 고운 핏물을 묻힐래요.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서둘러야 해요 나를 통과해 가는 그대의 눈을 볼래요 너무 오래 견딘 상처는 아물지 않아요 몹시 처량해진 나는 모르는 집 창문 밑에서 울 거예요 당신을 부르며 울 때 사람들은 어두워져요
문이 닫혀요
이렇게 부질없는 이야기는 처음 해봐요 나는 늘 술래이고 아직 아무도 찾지 못해요 가위바위보가 문제에요 나는 주먹만 쥐고 있거든요 아무도 내게 악수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아요 당신도 곧잘 숨는다는 걸 알아요 이제는 내가 숨을래요 꽃 피지 않는 계절에 오래도록 갇혀있을 거예요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봉숭아꽃이 만발했어요 보세요 정말 내가 모르는 집이에요 창문 밑에 피어난 저 붉은 봉숭아! 무슨 꽃은 봉숭아꽃이어야 해요 당신은 봉숭아꽃을 찾으러 온 거예요 나는, 나는 꽃 피지 않을 거예요
아무도 찾지 못해요 문은 열리지 않아요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사랑하는 일이다.
내 마음속의 꽃을 찾으러 온 사람에게 꽃을 보여주는 일은 참 어렵다.
사랑하는 법을 모르고 서투르고 그래서 늘 실패하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내 마음에 찾아오는 이가 있다.
주먹만 쥐는 게 아니라 펴기도 하고 접기도 해야는데,
그래서 이기고 지는 게임을 하며 교감할 수 있어야는데,
늘 잘 하지 못하고 처량한 봉숭아꽃만 보여주고
끝내 내 마음에 찾아온 이가 가버리니 슬프고 눈물나고 참담하고 그렇다.
학교에서는 절대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국어니 산수니 이런 거 다 부질없고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학교가 세워져야 한다.
우리 집에 왜 왔니,라고 부르짖지 않게,
꽃 찾으러 온 이에게 꽃을 보여주고 내어주는 진짜 사랑을 할 수 있게,
마음 문을 여는 게 진짜 사랑법이라는 걸 학교에서 배워야 한다.
영희야, 철수야 학교 가자.
진짜 사랑법을 배우러 우리, 학교 가자.
마음의 학교, 교문을 활짝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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