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의 소리[강은교]
물길의 소리[강은교]
그는 물소리는 물이 내는 소리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렇군,물소리는 물이
돌에 부딪히는 소리, 물이 바위를 넘어가는 소리, 물이 바람에 항거하는 소리,
물이 바삐 바삐 은빛 달을 앉히는 소리, 물이 은빛 별의 허리를 쓰다듬는 소
리, 물이 소나무의 뿌리를 매만지는 소리...... 물이 햇살을 핥는 소리, 핥아대
며 반짝이는 소리, 물이 길을 찾아가는 소리......
가만히 눈을 감고 귀에 손을 대고 있으면 들린다. 물끼리 몸을 비비는 소리가.
물끼리 가슴을 흔들며 비비는 소리가. 몸이 젖는 것도 모르고 뛰어오르는 물
고기들의 비늘 비비는 소리가......
심장에서 심장으로 길을 이루어 흐르는 소리가. 물길의 소리가.
* 장마철이다. 비가 자주, 많이 온다.
빗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은 것 같다.
나도 어릴 때는 처마밑으로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며 감상적이기도 하고
사념에 침잠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빗소리를 좋아하지만 봄이나 가을에 오는 비와는 달리 깔끔하지 않고 끈적이는 게
영 좋은 것만은 아니다.
빗소리는 물끼리 하늘에서 내려오면서 내는 소리다.
물은 한때 철학적인 의미에서 만물의 근원이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물은 그 자체가 생명을 가지고 우주 삼라만상을 움직인다.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나고 소리는 반응을 유발한다.
환호성으로 들리는 사람에게는 환호성으로
비명이나 신음으로 들리는 사람에게는 비명이나 신음소리로 들린다.
물은 비비면서 나아가야 하는데 때로 비비지 못하며 소외되는 물도 있다.
그런 물들은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홀로 몸이 상해 간다.
물이 가는 것은 법(法)이다. 흘러가는대로, 법대로 두는 것이 물길이다.
물길에서 나는 물소리를 들으며 귀를 씻자.
한동안 귀를 맑게 씻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