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이후[최명란]
황용엽
아우슈비츠 이후[최명란]
아우슈비츠를 다녀온
이후에도 나는 밥을 먹었다
깡마른 육체의 무더기를 떠올리면서도
횟집을 서성이며 생선의 살을 파먹었고
서로를 갉아먹는 쇠와 쇠 사이의
녹 같은 연애를 했다
역사와 정치와 사랑과 관계없이
이 지상엔 사람이 없다
하늘엔 해도 없다 달도 없다
모든 신앙도 장난이다
* 아우슈비츠를 다녀온 적은 없다.
다만 중국의 하얼빈에 있는 칠삼일부대의 잔학성을 보여주는 기념관은 다녀온 적이 있다.
인간이 인간답지 않은 상황은 참 많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나 칠삼일부대나 육이오전쟁이나
인간의 잘못은 아니지만 지진, 화산폭발, 폭우, 쓰나미와 같은 참변
버스가 마티즈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벼랑으로 굴러 사상자를 낸 교통사고......
수많은 참상 가운데에서도 인간은 꿋꿋이 버티고 이겨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픔은 뒤로 하고 밥을 먹는다.
참혹함이 파노라마처럼 아른거려도 밥을 먹는다.
그게 먹는 게 아니고 우겨넣는다손치더라도......
하지만 보이는 부분은 그럴지라도 참상을 겪고 난 인간은 그 트라우마가 대단해서
이 지상엔 사람이 있으되 없는 것으로 치고
신앙도 다 장난처럼 느낀다.
사랑도 시시해지고 돈도 명예도 그 어떤 것도 시시해진다.
그저 본능에 충실한 자아가 슬플 뿐이고 시시한 삶이 존재의 이유를 갉아먹을 뿐이다.
문득 제목은 잊었지만 어떤 영화,
눈덮인 산에 비행기가 추락해서 죽은 사람의 인육을 먹으며 삶의 희망을 가져보는 장면이 떠오른다.
인생의 막장에서도 인간은 살아야하겠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