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아프니까 그댑니다[이정록]

JOOFEM 2010. 8. 16. 12:48

 

                                                  민들레 꽃이 그렇게 달단다. 그런데 잎은 그렇게 쓸 수가 없다. 절묘한 조화.ㅎ

 

 

 

 

 

 

아프니까 그댑니다[이정록]

 

 

 

 

 

 

암에 걸린 쥐 앞에 열두 씨앗 놓아둡니다

성한 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씨알 쪽으로

병든 쥐가 시름시름 다가가 그러모읍니다

오물오물 독경하듯 앞발로 받듭니다

 

병든 어미 소를 방목합니다

건강한 소들은 혀도 디밀지 않는 독풀

젖통 출렁이며 허연 혀로 감아챕니다

젖은 눈망울로 뿌리째 뽑아먹습니다

 

그대 향한 내 병은 얼마나 깊은지요

그대 먼 눈빛에서 낟알을 거둡니다

그대 마음의 북쪽에 고삐를 매고

살얼음 잡힌 독풀을 새김질합니다

 

내가 아프니까 비로소 그댑니다

 

 

                                      - 『정말』 (창비, 2010)

 

 

 

 

 

 

 

 

 

* 여기에서 그대란 藥을 말하는 것 같다.

약은 맛이 참 쓰다.

평상시에는 단맛, 짠맛, 신맛, 매운맛을 즐기고 쓴맛은 대체로 먹지 않는다.

아파봐야 비로소 약으로 먹는 것이 쓴맛이다.

말그대로 인생의 쓴맛을 본 뒤라야 제대로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아직 제대로 살질 못해서 요즘은 쓴맛을 즐기고 있다.

민들레 장아찌나 봄에 먹는 씀바귀 같은 것이 입맛 돋구는 데는 최고다.

 

그대,라는 것도 늘 사랑하는 대상이지만

가끔은 어떤 아픔을 통해서만 藥과 같은 존재가 되어 비로소 그대가 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