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남남 39[조병화]

JOOFEM 2010. 9. 23. 14:31

 

 

 

 

 

 

 

 

남남 39[조병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저 세상에로

우리 서로 따로 이살 떠나면

우리 서로 주소도 모르리

 

지상에서 편질 띄우던 거처럼

혹은, 달아서

훅, 찾아가던 거처럼

한동안

정하고 거처하던 자리

간혹 이동을 한다손치더라도

 

어떻게 어떻게

기별 길 있을 수 있던 장소

그런 주소는 저 세상엔 있을 리 없으리

 

하늘인지, 땅인지, 별인지

나무가지인지

까마득한 이 우주

한번 뜨면 그뿐

다시 상봉할 길 다시 없으리

 

주소가 없는 곳으로 떠나고 있는 거다

길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있는 거다

말도 필요없는 곳으로 떠나고 있는 거다

 

눈물이고, 정이고, 기쁨이고, 고통이고

이 세상 인연

다 풀고

주소가 없는 곳으로 이살 하고 있는 거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저 세상에로

서로

따로

매일.

 

 

 

 

 

 

 

 

 

* 일천구백팔십이년 십일월 십일, 교내서점에서 오백원을 주고 산 조병화시선.

그 때에도 눈에 확 들어온 시였는데

오늘 우연히 꺼내들었다가 역시나 눈에 확 들어와서 옮겨보았다.

인간의 육신이 죽으면 영혼만 남고 영혼은 다른 세상으로 간다.

이 세상처럼 주소도 이름표도 그 어떤 표시도 없는 곳이다.

지상에서의 인연이 다시 맺어질 리 없고 기억도 없을 테다.

지상에서의 인연이 죽으면 남남보다도 못하다는 다분히 슬픈 얘기일까.

하지만 죽음 앞에서 유한한 생명을 더 소중히 여기고

남남이 아닌, 함께 눈물 흘리고 정 붙이고 함께 기뻐하며 함께 고통을 나누는 인연이 되자는 말은 아닌지.

 

이름, 주민등록번호, 닉네임......이런 것들을 벗어난 영혼은 나인가, 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