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남 39[조병화]
남남 39[조병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저 세상에로
우리 서로 따로 이살 떠나면
우리 서로 주소도 모르리
지상에서 편질 띄우던 거처럼
혹은, 달아서
훅, 찾아가던 거처럼
한동안
정하고 거처하던 자리
간혹 이동을 한다손치더라도
어떻게 어떻게
기별 길 있을 수 있던 장소
그런 주소는 저 세상엔 있을 리 없으리
하늘인지, 땅인지, 별인지
나무가지인지
까마득한 이 우주
한번 뜨면 그뿐
다시 상봉할 길 다시 없으리
주소가 없는 곳으로 떠나고 있는 거다
길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있는 거다
말도 필요없는 곳으로 떠나고 있는 거다
눈물이고, 정이고, 기쁨이고, 고통이고
이 세상 인연
다 풀고
주소가 없는 곳으로 이살 하고 있는 거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저 세상에로
서로
따로
매일.
* 일천구백팔십이년 십일월 십일, 교내서점에서 오백원을 주고 산 조병화시선.
그 때에도 눈에 확 들어온 시였는데
오늘 우연히 꺼내들었다가 역시나 눈에 확 들어와서 옮겨보았다.
인간의 육신이 죽으면 영혼만 남고 영혼은 다른 세상으로 간다.
이 세상처럼 주소도 이름표도 그 어떤 표시도 없는 곳이다.
지상에서의 인연이 다시 맺어질 리 없고 기억도 없을 테다.
지상에서의 인연이 죽으면 남남보다도 못하다는 다분히 슬픈 얘기일까.
하지만 죽음 앞에서 유한한 생명을 더 소중히 여기고
남남이 아닌, 함께 눈물 흘리고 정 붙이고 함께 기뻐하며 함께 고통을 나누는 인연이 되자는 말은 아닌지.
이름, 주민등록번호, 닉네임......이런 것들을 벗어난 영혼은 나인가, 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