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궁서체 [차주일]

JOOFEM 2010. 11. 12. 19:27

 

                                                          까불면 죽어!

 

 

 

 

 

 

 

궁서체 [차주일]

 

 

 

 

 

목련꽃봉오리가 화선지에 먹물 스미듯 부풀고 있다.

붓이 한 획을 내려 긋기 전

점 하나 힘주어 누르는 저 잠깐을 겨울이라 부르겠다.

우듬지마다 찍어 놓은 꽃봉오리를

한 무리의 말발굽소리가 내처 달려오는 중이라 말하겠다.

오직 북쪽만 향하던 외골수가 잎보다 먼저 피운 꽃

그 낙화를 겨울이 내려놓는 잔상이라 말하겠다.

꽃 진 자리에서 햇잎이 길어난다.

넓어지는 잎 따라 바람의 획이 굵어진다.

바람의 그림자가 먹물 스미듯 땅 위에 퍼진다.

이 가필을 봄이라 부르겠다.

말[馬]의 땀내 짙은 향기를 봄의 속도라 말하겠다.

당신 몸에서도 봄 떠난 지 오래되었다는 어머니

봄철 내내 궁서에'' 내리긋기 습자 중이다.

한 획 채 내리긋지 못하고

봄 한 철 차마 놓아주지 못하고

목련꽃봉오리 같은 먹점을 화선지에 가득 채워 놓았다.

보다 못한 내가 참견하는 것을 이른 봄이라 말하겠다.

어머니, 당신의 굽은 손가락 끝마디 하나 만들고

손가락 두어 마디 쭉 내리그으세요.

내 뒷머리 쓰다듬다가 냅다 내 손을 쥔 속도로 말이에요.

먹점 위에 다시 먹점을 찍어보던 어머니

굽은 채 굳은 열 손가락 끝마디를 하나하나 만져본다.

그래 이제 갈 때가 되었구먼, 어머니 혼잣말이

내 성대에 조율한 침묵을 나의 겨울이라 부르겠다.

뒷목덜미께 고이는 이 온기를 봄맞이라 말해야만 하는가.

어미 몸에서 내게로 내처 달려오는 무채색의 온기

내 몸에서 펴나므로 내가 모음이 되리라.

그때 나는 비로소 아들의 손을 쥐고

궁서체 ''처럼 고개 숙여 한 손의 서사를 들려주리라.

 

 

 

 

 

 

 

* 시는 왠지 따뜻하게 느껴지지만

내게 있어서 궁서체는 약간 살벌한 편이다.

직원들에게 일에 대한 질책을 할 때 이메일로 질책을 하는데

이 때의 서체로 궁서체를 쓰며 색은 빨간색을 취한다.

거래선 계획이 소일정에 누락되지 않도록 업무처리바람.

뭐, 이런 식이다.

업무를 하다보면 실수를 하거나 뜻밖의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그 때 그 때 지적해주지 않으면 재발하게 되고 그게 습관이 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면전에서 질책을 받은 직원은 자존심이 상하게 되고 특히나 다른 직원 앞에서는 수치심도 느낀다.

그래서 궁서체로 아무도 모르게 질책을 하지만 이 또한 가슴에 빨간 궁서체가 각인되어

긴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궁서체''처럼 구부러진 한 개의 못이 되어 박히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