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속리산에서[나희덕]
JOOFEM
2011. 7. 18. 21:24
속리산에서[나희덕]
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 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 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은 남아 있는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 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 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도 있는 높이를
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 주었다.
* 여름휴가철이다.
누구나 세속을 벗어나 자연과 함께 하며 속세를 잊고싶어 한다.
사는 게 전쟁터와 같아서이다.
속리,란 속세를 떠난다,이니 속리산은 여름휴가로는 딱인 셈이다.
꾸불텅 꾸불탕 멀미나는 길을 오르고 나면 평온한 마음을 주는 속리산 속이다.
문장대까지 오르는 것도 쉽진 않아서 속리(俗離)나 속내(俗內)나 같은 거지만
머리속이라도 속리가 되어 속내가 시끄럽진 않을 게다.
여름휴가철에 평안과 휴식이 함께 하길 모든 이에게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