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성선설 [임영조]

JOOFEM 2011. 8. 20. 10:11

 

                                                                            영화, 버터플라이의 한 장면

 

 

 

 

성선설 [임영조]

 

 



장기 복역하다 칠순 넘겨 출옥한
피부가 청년처럼 잔주름 하나 없이 깨끗한
어느 기이한 노인에게 목사 시인이* 물었다
헌데 비결은 아주 간단한 '건포마찰'
대답은 짧지만 사연은 너무 긴 것이었다

감방에서 몇십 년을 하루도 안 거르고
자고 새면 손끝에서 발끝까지 전신을
마른 수건으로 문질러 닦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노인은 건강비결을 설하려다가
개과천선을 들켜버린 셈이다
목사 시인은 장수비결을 설하려다가
성악설을 흘려버린 셈이다

노인의 유일한 방주는 수건이다
마른 수건 한 장에 여생을 걸고
인간의 탈을 벗고 싶었을 게다
생의 지우개로 과거를 지우고
새 사람이 되고 싶었을 게다
마른 수건 한 장으로 사포질하듯
마음속 때도 오래 문질렀을 것이다

묵은 마늘이나 양파 껍질도
눈물깨나 흘리며 까고 벗겨야
참 매끄럽고 말간 속살이 드러난다
사람의 속내도 그와 같아서
마음 안팎 허물부터 벗겨야 한다
닦을수록 본성이 착하고 예쁜 축생은
사람이라고 설하다 간 사람 누구였더라?

 

 

* 고진하시인. 여러해 전 강릉 해변 문학행사에 갔다가 고시인을 처음 만나

담소를 나누던 중에 얻어들은 이야기를 소재로 재구성해 본 것이다.

 

 

 



* 인간은 마흔까지만 살아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지론이다.

왜냐하면 모든 게 상승곡선을 타고 발전을 하면서도 착한 본성을 지키며 살지만

정오의 삶을 넘기고부터는 같은 시간이라도 무서운 속도로 지나가며

더불어 조금씩 악한 본성들이 드러나는 까닭이다.

무서운 속도를 늦추려고 지푸라기도 잡아보고 스치로폴도 잡아보고

전신주며 사다리며 간판이며 뭐든 정신없이 잡아보지만

결국은 생의 지우개로 지우고 싶은 과거들만 속속들이 생기게 된다.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 의견이 분분하여도 지나고 보면 사실 별 의미없는 논쟁이긴 하다.

F = ma

가진 것 다 내려놓고 무게를 줄이는 게 그나마 성선설을 논할 수 있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