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자작나무 여자 [최창균]

JOOFEM 2011. 8. 21. 15:11

 

                                                                                               이수동 그림

 

 

 

 

자작나무 여자 [최창균]

 

 

 

 

그의 슬픔이 걷는다

슬픔이 아주 긴 종아리의 그,

먼 계곡에서 물 길어올리는지

저물녘 자작나무숲

더욱더 하얘진 종아리 걸어가고 걸어온다

그가 인 물동이 찔끔,

저 엎질러지는 생각이 자욱 종아리 적신다

웃자라는 생각을 다 걷지 못하는

종아리의 슬픔이 너무나 눈부실 때

그도 검은 땅 털썩 주저앉고 싶었을 게다

생의 횃대에 아주 오르고 싶었을 게다

참았던 숲살이 벗어나기 위해

또는 흰 새가 나는 달빛의 길을 걸어는 보려

하얀 침묵의 껍질 한꺼풀씩 벗기는,

그도 누군가에게 기대어보듯 종아리 올려놓은 밤

거기 외려 잠들지 못하는 어둠

그의 종아리께 환하게 먹기름으로 탄다

그래, 그래

백년 자작나무숲에 살자

백년 자작나무숲에 살자

종아리가 슬픈 여자,

그 흰 종아리의 슬픔이 다시 길게 걷는다

 

 

 

 

 

 

 

* 이 시를 읽으며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는 경제력이 없는 아버지를 대신해 화장품 외판원을 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이니까 벌써 사십년 전이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쥬단학,이라는 화장품을 커다랗고 각진 가방에 넣고

먼 동네까지 가서 화장품을 팔고 오셨다.

무거운 상품의 무게와 먼 거리의 걸음은 정말 털썩 주저앉고 싶으셨을 게다.

어머니의 하얀 종아리는 그래서 늘, 슬픔이 배어 있었다.

지금 살아계신다면 그 하얗고 살없는 종아리를 살살 주물러 드릴텐데

이제는 그 슬픈 하얀 종아리를 대할 수가 없으니 내 마음이 슬픈 하얀 종아리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