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화투 치는 여자들 [박진성]

JOOFEM 2011. 10. 16. 20:52

 

                                                                                                                            조영남 그림

 

 

 

 

 

 

 

 화투 치는 여자들 [박진성]

 

 

 

 

   

  늙은 여자들 평상에 앉아 화투(花鬪) 친다

 

  꽃들은 다투어 피고 다투어 지고 봄인데 바람 불어 난분분 꽃잎 흩날리는데 까르르르르 다투어 공중으로 화투패를 들고

  똥을 쌌다고 이 나이에 아무 데나 아무 때나 똥을 싼다고 웃고 웃고

  흔들었다고 늙은 엉덩일 흔들흔들 몸뻬바지는 헐렁한 경로당 바람 깔고 앉아 들썩이고

  피는 쌍피가 좋다고 사슴 피보다 좋다고 햇볕이 수혈 받은 실정맥처럼 바쁘게 평상을 기어다니고 퍼지고 흩어지고

  향기도 없는데 모란에 나비가 앉고 저도 늙고 싶고

  온갖 잡새들어 모여들어 났다 났어 백동전들 알처럼 뒹굴고 치마 속에서 부화하고

  봄바람 머금어 치마는 부풀어 오르고 하늘은 홍단처럼 붉어지고

  꽃들은 지고 피고 자꾸 어두워지고

 

  홍성댁 정읍댁 함흥댁 고성댁...... 우리가 잊은 꽃들이여

 

  났고 났고 아라리가 났어도 영원히 떼이는 어머니들이여

 

  더 어두워지기 전에

  읽던 시집 내려놓고

  光 팔고 싶습니다

 

 

 

 

 

* 얼마전, 추석때 팔순이 넘은 이모님, 칠순이 넘은 이모님께 인사를 다녀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화투패를 통해 치매예방을 하시던 분들이다.

다들 점당 십원짜리 고스톱을 치지만 치열하게 돈을 따려고 전투를 벌이셨고

계산이 서로 틀린 땐 어머니가 법관처럼 명쾌하게 정확한 계산을 해주셨다.

네 자매가 참 잘도 모이고 잘도 화투 치시더니 어머니가 훌쩍 떠나시고는 모이질 않으셨다.

순전히 계산이 안되셔서 그런 게다.

팔순이 넘은 또 한 분의 이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더구나 화투를 돌릴 수 없었는지

두 분 이모님은 매일 만나 광 팔던 얘기, 똥 싼 얘기, 피박 쓰던 얘기로 꽃 지는 시간을 보내신다.

더 꽃이 지기 전에 光 하나라도 더 파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