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천천히 가는 시계 [나태주]

JOOFEM 2011. 12. 11. 21:51

 

 

 

 

 

 

천천히 가는 시계 [나태주]

 

 

 

 

천천히 천천히 가는 시계를 하나 가지고 싶다

수탉이 길게 길게 울어서

아, 아침 먹을 때가 되었구나 생각을 하고

뻐꾸기가 재게 재게 울어서

어, 점심 먹을 때가 지나갔군 느끼게 되고

부엉이가 느리게, 느리게  울어서

으흠, 저녁밥 지을 때가 되었군 깨닫게 되는

새의 울음소리로만 돌아가는 시계

나팔꽃이 피어 날이 밝은 것을 알고

또 연꽃이 피어서 해가 높이 뜬 것을 알고

분꽃이 피어서 구름 낀 날에도

해가 졌음을 짐작하게 하는

꽃의 향기로만 돌아가는 시계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가고

시도 쓸 만큼 써보았으니

나도 인제는, 천천히 돌아가는 시계 하나쯤

내 몸 속에 기르고 싶다.

 

 

 

 

 

 

* 막내딸이 신발을 사달라고 하여 함께 백화점 가는 길에

시계도 하나 사달라고 한다.

작년에 시계를 사달라고 졸랐지만 차고 있던 시계가 오래되고 낡아서 더 좋은데,

꼭 바꾸어야 되냐고 물었더니 그냥 차고 다니겠다고 하며 일년을 더 찼었다.

이번에도 또 똑같은 말을 하면 상처를 줄지도 몰라 그래, 하나 사자,고 했다.

오래된 시계가 더디 시간이 갈까만은

왠지 새로산 시계는 새거라 시간이 빨리 갈 것만 같아

막내가 불쑥 커버리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다.

아니 벌써 고삼으로 진입을 할 터이니 불쑥 커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시계가 더디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막내가 늘 품안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제는 친구가 될만한 나이도 되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대화도 하는데

아이들은 자꾸 자꾸 독립운동을 하는 것 같다.

시간도 자꾸 자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