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極地)에서 [이성복]
극지(極地)에서 [이성복]
무언가 안 될 때가 있다
끝없는, 끝도 없는 얼어붙은 호수를
절룩거리며 가는 흰, 흰 북극곰 새끼
그저, 녀석이 뜯어먹는 한두 잎
푸른 잎새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소리라도 질러서, 목쉰 소리라도 질러
나를, 나만이라도 깨우고 싶을 때가 있다
얼어붙은 호수의 빙판을 내리찍을
거뭇거뭇한 돌덩어리 하나 없고,
그저, 저 웅크린 흰 북극곰 새끼라도 쫓을
마른 나무 작대기 하나 없고,
얼어붙은 발가락 마디마디가 툭, 툭 부러지는
가도 가도 끝없는 빙판 위로
아까 지나쳤던 흰, 흰 북극곰 새끼가
또다시 저만치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볼 때가 있다
내 몸은, 발걸음은 점점 더 눈에 묻혀 가고
무언가 안 되고 있다
무언가, 무언가 안 되고 있다
* 살면서 무언가 잘 안 되고 있을 때가 있다.
내 삶이 안 되고 있을 때가 있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이 나라가 안 될 때가 있다.
질서는 점점 무질서해지고 있고
삶은 갈수록 팍팍해진다 하고
빈부의 격차는 더욱더 심해진다.
그럴수록 갈등은 깊어만 가고 도덕은 타락하고 있다.
신문에는 좋은 뉴스보다 안 좋은 뉴스로 도배를 한다.
다 돈과 관련된 것이거나 정치적이거나(이것도 결국은 돈으로 귀결되는...) 부도덕에서 온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팽팽한 대결은 있다.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는 일이다.
웅크린다는 것은 지금의 상황이 안 좋아서 다음을 노리는 것이고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려는 시도가 그것이다.
무언가 안 되고 있다는 것은 무언가 잘 되기를 갈망하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암튼 지금 무언가 안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 교황이 흰 연기를 올리고 선출되었다.
프란치스코 1세, 새 교황은 강론에서
"현대 사회의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에게 희망을 주는 인류가 될 것을 강조하면서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라."는 메세지를 주었다고 한다.
무언가 잘 되기를 바라며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