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잠
꽃잠[이재무]
꽃 피운 목련나무 그늘에 앉아
누군가 부쳐온 시집 펼쳐놓는다
아니, 시는 건성으로 읽고
행간과 행간 사이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햇살은 낱알로 내려 뜰 가득 고봉으로
소복 쌓이고 시집 속 봄볕에
나른해진 글자들
겯고 튼 몸 뒤틀다가 하나, 둘, 셋
느슨하게 깍지를 풀고
꼬물꼬물, 자음과 모음 벌레 되어 기어나온다
줄기와 가지 따라 오르고
꽃 치마 속 파고들기도 한다
간지러운 듯 나무가 웃고
꽃은 벙글벙글
이마에 책 쓰고 누워
배 맛처럼 달고 옅은 꽃잠을 잔다
꽃 잠 [김용택]
저기 저 남산 꽃산에
꽃 되어 가는 길
그대 만나 우리 함께
봄잠 들었네
잠자는 동안 꽃들은 피어나
우리를 덮고
새들은 날아
푸른 하늘 열었네
우리 둘이 꽃산 되어
깊은 잠 잘 때
어린 산 하나
꽃 속을 걸어나와
돌아다니며 놀다가
작은 꽃산 되어
우리 사이에 꽃잠 자네
우리 오늘 난생 처음
꽃 속에 꽃산 되어
식구끼리 행복한 꽃잠 잘 때
집집이 꽃 피어 울 넘고
마을에서 마을로
꽃길이 열리었네.
꽃잠 [김규성]
꽃잠이라고 했다 꽃들의 잠? 아니면 꽃처럼 고운 잠? 그러나 꽃은 온몸을 활
짝 뜨고 눈부시게 살 떨려 깨어 있음 아닌가 아마도 신혼의 꿀잠만한 열흘 꽃
의 설렘이 맞을, 국어사전에도 잘 눈에 띄지 않는 순우리말이 혀끝에서 감칠수
록 달다 요새 그 꽃잠을 자주 들킨다 헤아릴 수조차 없는 막幕 중의 아주 짧은
막간幕間, 섬광 같은 이승을 순간 포착하려는 어여쁜 수작 같은, 그리하여 아주
죽음에 이르러서야 야, 꽃잠 한 숨 잘 잤다고 잘 익은 꽃향기처럼 화들짝 깨어
날 것만 같은, 그래! 누군가 너무 쉽사리 못박아놓은 고해苦海가 꽃잠이라면 이
왕 꽃 중의 꽃으로 아름답고 알큰한 꿈이나 꾸자꾸나 사랑이여, 그 잠꼬대를
꽃말처럼 바지런히 받아 적는가
* 요즘 봄이라고 꽃들의 반란이 일어나 꽃들과 전쟁하듯 구경 다니느라 몸살이 난다.
이 몸살은 꽃몸살인가 몸꽃살인가. 밤이면 세상 모르고 잔다.
이쯤되면 아주 행복한 잠에 속할 게다. 잠은 보약이다? 아니다?
원래 꽃잠이란 신랑신부의 첫날밤, 잠인데 등 돌리고 코골며 자면 우짠다냐.ㅎ
그런데 꽃 때문에 난 꽃몸살이라면 서로 등돌리고 코골며 자느라 바쁠 터이니
꽃잠 자더라도 아무것도 문제될 게 없다.
뉴스시간에 본 진해군항제를 바라보며 하이구야, 저 사람들 꽃잠 좀 자겠네!
괜히 심술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