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꽃잠

JOOFEM 2013. 4. 1. 21:38

 

 

 

 

 

 

 

꽃잠[이재무]

 

 

 

 

꽃 피운 목련나무 그늘에 앉아

누군가 부쳐온 시집 펼쳐놓는다

아니, 시는 건성으로 읽고

행간과 행간 사이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햇살은 낱알로 내려 뜰 가득 고봉으로

소복 쌓이고 시집 속 봄볕에

나른해진 글자들

겯고 튼 몸 뒤틀다가 하나, 둘, 셋

느슨하게 깍지를 풀고

꼬물꼬물, 자음과 모음 벌레 되어 기어나온다

줄기와 가지 따라 오르고

꽃 치마 속 파고들기도 한다

간지러운 듯 나무가 웃고

꽃은 벙글벙글

이마에 책 쓰고 누워

배 맛처럼 달고 옅은 꽃잠을 잔다

 

 

 

 

 

 

 

 

꽃 잠 [김용택]

 

 

 

 

 

저기 저 남산 꽃산에

꽃 되어 가는 길

그대 만나 우리 함께

봄잠 들었네

잠자는 동안 꽃들은 피어나

우리를 덮고

새들은 날아

푸른 하늘 열었네

 

우리 둘이 꽃산 되어

깊은 잠 잘 때

어린 산 하나

꽃 속을 걸어나와

돌아다니며 놀다가

작은 꽃산 되어

우리 사이에 꽃잠 자네

 

우리 오늘 난생 처음

꽃 속에 꽃산 되어

식구끼리 행복한 꽃잠 잘 때

집집이 꽃 피어 울 넘고

마을에서 마을로

꽃길이 열리었네.

 

 

 

 

 

 

꽃잠 [김규성]

 

 

 

 

 

꽃잠이라고 했다 꽃들의 잠? 아니면 꽃처럼 고운 잠? 그러나 꽃은 온몸을 활

짝 뜨고 눈부시게 살 떨려 깨어 있음 아닌가 아마도 신혼의 꿀잠만한 열흘 꽃

의 설렘이 맞을, 국어사전에도 잘 눈에 띄지 않는 순우리말이 혀끝에서 감칠수

록 달다 요새 그 꽃잠을 자주 들킨다 헤아릴 수조차 없는 막幕 중의 아주 짧은

막간幕間, 섬광 같은 이승을 순간 포착하려는 어여쁜 수작 같은, 그리하여 아주

죽음에 이르러서야 야, 꽃잠 한 숨 잘 잤다고 잘 익은 꽃향기처럼 화들짝 깨어

날 것만 같은, 그래! 누군가 너무 쉽사리 못박아놓은 고해苦海가 꽃잠이라면 이

왕 꽃 중의 꽃으로 아름답고 알큰한 꿈이나 꾸자꾸나 사랑이여, 그 잠꼬대를

꽃말처럼 바지런히 받아 적는가

 

 

 

 

 

 

* 요즘 봄이라고 꽃들의 반란이 일어나 꽃들과 전쟁하듯 구경 다니느라 몸살이 난다.

이 몸살은 꽃몸살인가 몸꽃살인가. 밤이면 세상 모르고 잔다.

이쯤되면 아주 행복한 잠에 속할 게다. 잠은 보약이다? 아니다?

원래 꽃잠이란 신랑신부의 첫날밤, 잠인데 등 돌리고 코골며 자면 우짠다냐.ㅎ

그런데 꽃 때문에 난 꽃몸살이라면 서로 등돌리고 코골며 자느라 바쁠 터이니

꽃잠 자더라도 아무것도 문제될 게 없다.

뉴스시간에 본 진해군항제를 바라보며 하이구야, 저 사람들 꽃잠 좀 자겠네!

괜히 심술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