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우주사막 [김병호]

JOOFEM 2013. 4. 8. 13:12

 

* 영화 "웜바디스"의 한 장면. 우주사막의 한가운데에서 좀비들은 어슬렁어슬렁, 이름도 모르는 좀비들. 주인공만 이름이 R이다.

 

 

 

 

 

 

우주사막 [김병호]

 

 

 

 

 

 

잠을 자던 아이가 갑자기 칭얼거린다

무슨 나쁜 꿈인가 싶어

얼른, 아이를 품에 안는데

다시금 온몸을 떤다

 

 

어디를 다녀온 길일까

 

 

생이 생을 건너는 순간을

나도 다녀온 날들이 있다

 

 

허방을 딛고 떨어지는 별똥별처럼

바다보다 긴 목숨으로 시간을 밀고

아침을 얻기 전의 숨들이 고여 있는 곳

 

 

그곳을 다녀온 자들은

별을 잃고 비밀을 얻어

고아가 된다

 

 

지상에서 익힌 모든 이름들이

하룻밤 새 하얗게 세어버린다

 

 

 

 

 

 

 

* 꽃잠을 자는 요즘, 우주를 떠돈다.

우주도 황량하지만 사막도 황량하다.

우주사막은 우주 안에서도 더 황량한 곳이리라.

꽃꿈을 꾸면 이름을 모르는 이들을 만난다.

그들은 분명 이름이 있을 텐데 이름을 알려주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

이름을 알 필요도 없고 부모가 누구인지 자식은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영혼들만 거주하는 우주사막, 사랑은 있기나 하는 걸까?

 

어제 새벽에는 개꿈을 꾸었다.

개를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나는 잘못 들어간 집에서 사나운 개를 만나

옆집으로 옆집으로 아무리 옮겨가도 들어간 곳을 나올 수가 없는 거다.

계속 미로를 찾다가 까만 강아지들이 많은 곳에서 어미개를 피해 문을 나섰다.

그런데 이게 뭥미? 그곳은 낯설고 우주사막 같은 곳이 아닌가.

등장인물들도 이름이 없고 개들도 이름은 없었다.

깨고 나니 꿈만 이름이 있다. "개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