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지나간 자리 [정윤천]

JOOFEM 2013. 7. 16. 18:28

 

 

 

 

 

 

지나간 자리 [정윤천]



1

모든 것들은 지나가고
모든 것들은 머물다 간다

비 지나가고 나면
비 지나간 자리는 젖고

비 지나간 자리는
볕만이 와서 말리고 간다

이럴 때는, 볕이 지나가고
볕이 머물다 간 것이 된다

사람의 흉중으로도 때론 비 지나가고
그 자리 위로, 볕이 머물다 가기도 한다.



2

비 지나가고, 볕이 와서 머물다 갔더라도
마음이 지닌 것 중에 못 말리는 것이 하나 있다

비 지나가고, 제 아무리 볕이 와서 머물다 갔더라도
먼 곳을 향해 젖어 있는 눈시울 같은 기억이 있다.


 

 

 

 

 

 

* 가끔 뭔가가 지나가는 때가 있다.

그때마다 마음속으로 되뇌이는 게 '이 또한 지나가리라'이다.

고삼, 군대생활, 직장 신입시절, 신혼살림, 부모님 상, 친구와의 결별 등등

지나가는 것, 혹은 지나가야만 하는 것이 꼭 있다.

그런데 지나가긴 하는데 반드시 뭔가 남기는 것이 있다.

마치 나이테처럼 진한 흔적들이 남는데

때로는 후회, 때로는 눈물, 때로는 상처, 때로는 추억 등이 남는다.

지나간 자리가 많아야 인생은 후덕해지고 철학이 확고하다.

볕이 다녀간 그 자리에 서서 볕이 참 따뜻했구나, 그게 사랑이었구나,를

지나가고 난 뒤에야 알아차린다는 게 늘 회한으로 남는다.

'있을 때 잘 해!'라는 말이 절실히 느껴진다.

맞아, 사랑은 줄 때 받아야 해.

지나가면 받을 수 없기에 있을 때 잘 하고 사랑은 줄 때 받아야 해!

앞으로 또 뭔가가 지나갈 텐데 젖고 말리고 젖고 말리고

기브앤테이크로 사랑을 누려야 하리라.

흔적도 남겨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