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가벼운, 담론 [유지인]
너무나 가벼운, 담론 [유지인]
깨지는 게 두려운 유리컵은 언제나 투명하다
보이지 않는 것에 더 궁금해지는 시선 속에서
가끔은 모호하게 더 투명해진다
어느 미술 평론가의 아직 '작품에 깊이가 없다'는 말
너무 깊게 들어버린 한 젊은 여류화가가 깊이를 앓는다
제 살이 깎여져도 아픈 줄 모르는 그믐달처럼
그녀가 베란다 난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내부를 보여주기 위해 점점 기울어가는 물병처럼
그녀가 한쪽으로 기울어가다 엎질러진다
"안녕! 엎질러진 물로는 이젠 아무것도 채색할 수 없어요"
데려온 아이처럼 무표정한 화폭속의 사물은
그녀의 열정적인 내부를 더 이상 닮아가지 않는다
해석할 수 없는 상처의 코드처럼
'깊이에의 강요'*는 암호처럼 그녀의 머릿속을 날아다녔다
예술의 내부도 밤과 낮처럼 명징했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짐승처럼 엎드려 자기 안의 어둠을 물어뜯었다
젊음의 신선한 감각과 연륜의 깊이가
때론 공존하지 않음을 설명할 수 없다는 건
정말로 예술의 아이러니였다
도다리의 눈처럼 한쪽으로 쏠려버린
그녀의 눈 속에서 사물은 더 이상 옷을 갈아입지 않는다
평론가의 말에 함부로 마음을 내준 그녀가
깊이를 찾아 죽음의 허공을 건너뛴다
발 빠르게 달려온 평론가의 반전의 말이
바람에 쉽게 뒤집어지는 이파리처럼
조문객들의 입속에서 팔랑거렸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제목
* 평론가와 비평가는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사전적으로는 유의어이지만...)
비평가는 말 그대로 비평을 하지만 주로 비판을 한다.
작품을 자신의 잣대로 보고 다르면 가차없이 채찍을 내리친다.
반면에 평론가는 때로는 채찍을 내리치기도 하지만 대개는 긍정적인 말로 기운을 북돋게 한다.
얼핏 보기엔 비평가가 많이 알고 왠지 멋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의 한 유명대학의 문학도들이 두 부류로 나뉘었단다.
한쪽은 신랄하게 비평 비판하는 학생들의 모임이고
다른 한쪽은 담담하게 평론을 하며 작품에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발굴했다고 한다.
훗날 평론을 하며 문학을 했던 쪽에서는 많은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는가 하면
비평을 하던 쪽에서는 그럭저럭 먹고 살기만 했다고 한다.
어린이들에게 '너, 참 그림 잘 그리는구나'하고 칭찬해주면
점점 더 그림을 잘 그리게 될 게다.
'너, 그림이 이게 뭐야. 코는 왜 이리 크고 귀는 이렇게 작게 그렸니.'라고 하면
자신감도 떨어지고 그림 그릴 기분이 나지 않을 게다.
멋있어보이는 비평도 좋지만 그 말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그 말을 들은 사람을 절벽으로 떨어뜨린다.
작품에 깊이가 없다는 말은 함부로 하지 않아야 한다.
중학교때 백일장 상을 주던 담임선생이 '이거 니가 쓴 시, 맞아?'라고만 안했어도
나는 시를 쓰는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난장이똥자루같은 국어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