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혼자 [이병률]

JOOFEM 2013. 9. 29. 22:09

 

                          * 때때로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 한 방울일수도 있고, 때때로 바람 한 줌일 수도 있는......

 

 

 

 

 

혼자 [이병률]

 

 

 

 

나는 여럿이 아니라 하나

나무 이파리처럼 한 몸에 돋은 수백 수천이 아니라 하나

파도처럼 하루에도 몇 백년을 출렁이는

울컥임이 아니라 단 하나

하나여서 뭐가 많이 잡힐 것도 같은 한밤중에

그 많은 하나여서

여전히 한 몸 가누지 못하는 하나

 

한 그릇보다 많은 밥그릇을 비우고 싶어 하고

한 사람보다 많은 사람에 관련하고 싶은

하나가 하나를 짊어진 하나

 

얼얼하게 버려진, 깊은 밤엔

누구나 완전히 하나

가볍고 여리어

할 말로 몸을 이루는 하나

오래 혼자일 것이므로

비로소 영원히 스며드는 하나

 

스스로를 닫아걸고 스스로를 마시는

그리하여 만년설 덮인 산맥으로 융기하여

이내 녹아내리는 하나

 

 

 

 

 

 

* 만년설 덮인 산맥에 융기하여 만년이나 혼자여야 한다는 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가끔은 혼자일 때도 있는 법, 사람 많아서 그래도

혼자일 때가 좋을 때도 있는 법.

영화 "관상"을 혼자 보았다. 혼자? 리.얼.리?

펜타포트 씨지븨 4열 18번 맨 끄트머리에서 혼자 보았다.

옆 좌석은 다들 커플들이 팝콘으로 부스럭거릴 때 난 엔제리너스 아메리카노로 홀짝거리며......

마지막 장면에 송강호가 철썩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나는 때때로 변하는 파도만 보고 바람은 보지 못했소.

파도를 움직이는 것은 바람인 것을......'

바람에 섞여 혼자가 아닌데도 늘 혼자로 느껴야 하는 영혼인 것을,

만년이나 혼자여야 한다니 슬퍼해야 하나 덤덤해야 하나.

바람의 시인, 이병률시인의 "혼자"를 읽으며 바람에 섞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