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병법 [정끝별]
왜 꼬나보냐?......최석운 그림, 지하도
사랑의 병법 [정끝별]
네가 나를 베려는 순간 내가 너를 베는 그 궁극의 타이밍을 일격一擊이라 하고
나무의 뿌리가 같고 가지 잎새가 하나로 꿰는 이치를 일관一貫이라 한다
한 점 두려움 없이 손님처럼 나를 주고 너를 받는 기미가 일격이고
흙 없이 뿌리 없듯 뿌리 없이 가지 잎새 없듯 너 없이 나 없는 빌미가 일관이라면
너를 관觀하여 미지의 틈을 일으켜 너를 통通하는 한 가락이 일격이고
나를 관觀하여 쉼 없는 지극함으로 나를 통通하는 한 마음이 일관이다
일격은 일순의 일이고 일관은 일생의 일이다
일관이 일격을 꽃피울 때
일 푼 숨이 멎고 일 푼 바람이 부푼다
무인이 그렇고 달인이 그렇고
전설 속 설인이 그렇고 애인이 그렇다
일생을 건 일순의 급소
너를 통과하는 외마디를 들을 것도 같다
단숨에 내리친 단 한번의 사랑
나를 읽어버린 첫 포옹이 지나간 것도 같다
굳이 시의 병법이라고도 말하지 않겠다
내가 시인인 까닭이다.
* 병법을 익히고 배우면 잘 살 수 있으려나.
일격, 일관. 기미, 빌미. 일순, 일생. 단 한번의 사랑!
시인은 사물을 혹은 인생을 잘 본다. 자알.
본다는 것은 視도 있도 看도 있고 見도 있고 觀도 있다.
視는 눈으로 바라보이는대로 바라보는 것을 말하고
看은 스치듯 지나치며 어렴풋이 보는 것을 말하며
見은 자신의 생각대로 분별하여 보는 것을 말하며
觀은 자신의 모든 인생경험을 통해 꿰뚫어보는 것을 말한다.
시인은 대개 觀의 경지에서 병법을 부린다.
단 한번의 사랑을 후회하지 않으려면 觀의 경지로 일관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시인인 까닭이라고 고백하는 저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觀의 경지에 도달한 것일 게다.
요즘 눈이 침침해지고 잔 글씨가 가물거리고 視도 잘 안되는데 觀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