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책 [김재혁]

JOOFEM 2013. 10. 11. 12:38

 

 

 

 

 

 

 

책 [김재혁]

 

 

 

 

구름보다 더 늙은

책이 내 얼굴을 쳐다본다.

내 얼굴을 들이마시고 어루만진다,

내 마음을 제본하여 읽어보라고 내민다,

책의 손가락이 내 속을 더듬으며

뒤틀린 내 영혼의 손목에 봉침을 놓으며 웃는다.

병원복도에서 소리 지르는

반 귀머거리 노파,

귀먹은 책이 나를 향해 소리친다,

생의 계절은 늘 그늘이었다고,

앞을 못보는 책은

뱃고동 소리가 들려오면

낡은 귀를 쫑긋세운다,

책의 행간을 바람이 지난다,

책의 밭고랑에 시간이 흐르며

물결친다, 책에 해일이 일어

사랑이 묻히고 죽음도 묻히고

책에 눈이 내려 어둠이 진다.

 

 

 

 

 

 

 

* 김재혁교수는 시인이다. 아니 사실은 번역으로 더 유명하다.

웬만한 독일문학은 김재혁교수의 번역을 쳐준다.

'딴생각'이라는 시집을 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우리 동네 영풍문고나 교보문고엔

그 시집이 없어 사지 못하고 있다.

우연히 블로그를 돌다 "생의 본능"을 만났다.

김재혁시인의 닉네임이다.

오래된 일이지만 엠파스에서 블로그를 할 때 이웃으로 드나들며 소통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거나 반가워 한 편의 시를 옮겼다.

아무래도 책 번역을 많이 해서 그런지 책에 관한, 이 시는 더 정감이 간다.

얼핏 보면 독일시를 번역한 것처럼 보인다.

번역풍이라고나 할까.

딜레탕트님을 만나면 독일어로 번역을 해달라고 청탁해야겠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