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대하여 [최문자]
믿음에 대하여 [최문자]
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
금방 날아갈 휘발유 같은 말도 믿는다.
그녀는 낯을 가리지 않고 믿는다.
그녀는 못 믿을 남자도 믿는다.
한 남자가 잘라온 다발 꽃을 믿는다.
꽃다발로 묶인 헛소리를 믿는다.
밑동은 딴 데 두고
대궁으로 걸어오는 반토막짜리 사랑도 믿는다.
고장난 뻐꾸기 시계가 네시에 정오를 알렸다.
그녀는 뻐꾸기를 믿는다.
뻐꾸기 울음과 정오 사이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녀의 믿음은 지푸라기처럼 따스하다.
먹먹하게 가는 귀 먹은
그녀의 믿음 끝에 어떤 것도 들여놓지 못한다.
그녀는 못 뽑힌 구멍투성이다.
믿을 때마다 돋아나는 못,
못들을 껴안아야 돋아나던 믿음.
그녀는 매일 밤 피를 닦으며 잠이 든다.
*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이 있다.
그녀가 쉬 믿었던 마음에 못이 매일 매일 박혔고, 피를 닦았다는 것은 발등을 찍혔다는 말일 게다.
주페가 주장하는 사랑의 네 단계는 이렇다.
like, believe, love, need.
좋아하는 단계를 지나면 믿음의 단계가 온다.
사랑의 전 단계이지만 거의 사랑의 단계나 다름없다.
그러니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기도 할 게다.
믿었는데, 거짓말도 진짜처럼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어쩌면 사랑은 몸에 박힌 못을 빼내고, 피를 닦는 과정이 반복되고서야
비로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울 것이다.
피아노를 치면서 손가락 끝에 못이 박히지 않고서야 어찌 훌륭한 연주가 나올까.
사랑을 한다고 해도 못 뽑을 일은 많을테니
못 뽑는 튼튼한 빠루 하나씩은 지니고 살면서
상처받고 못 박힌 영혼이 될 때마다 빠루로 못 뽑으며 치유를 받을 일이다.
빠루는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