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새의 팔만대장경 [서안나]

JOOFEM 2014. 4. 12. 13:57

 

 

 

 

 

 

새의 팔만대장경 [서안나]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 경판은 무르나 단단했다 나무를 바닷물과 뻘

밭에 묻어 결을 달랬다고 했다 나무의 습성을 내려놓는 치목(治木)이라

했다

 

  겨울 천수만의 새들도 부드러우나 단단했다 뻘밭에 고개를 박은 새에

게서도 산벚나무 냄새가 났다 주둥이부터 꼬리까지 옹이가 없는 둥근 선

을 지녔다

 

  새가 새를 끌고 날아오르는 것은 몸 안의 팔만 사천 자를 구름에 적는

순간이다 서둘러 날아올라도 새는 뒤틀리거나 부러지지 않는다 경판과

경판 틈새 바람이 잘 통하였다 새의 모퉁이가 상하지 않는다

 

  팔만대장경을 읽는 데 30년이 걸린다고 했다 물속의 젖은 부처가 손

을 내밀어 내 몸의 비린 경판을 읽는 것이 한 생이라면 사랑은 여기까지

다 내 몸 가득 쓰인 육필 경전 부드러우나 단단했다

 

 

 

 

 

 

* 직장생활을 거의 삼십년을 했다.

오륙도,라는 말이 있다. 오십육세까지 직장을 다니면 도둑놈이라는 거다.

아직 이,삼년 정도 남았으니 도둑놈은 아니다.

전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평가했지만 요즘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평가한다.

일년에 한번씩 평가결과를 피드백 받는데

꼭 나오는 말이 외유내강이다.

부드러우나 단단하다는 말이지 싶다.

카리스마가 있어요,라는 사람이 반

카리스마가 없어요,라는 사람이 반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있다, 없다 느끼는 것이니 둘 다 겸허히 받아들인다.

흐르는 물처럼 여기까지 왔으니 있다고 봐야하고

그동안의 육필은 평가가 필요없는 온전한 나의 기록이다.

앞으로 몇글자나 더 육필을 새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 모습 이대로 갈 거라는 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