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발길 [이상호]
거대한 발길 [이상호]
1
고갯길에서 고속버스가 구르고
철길에서 고속열차가 부딪치고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박살나고
무거운 목숨들이 쏟아져 나뒹구는 무서운 영상을 무수히 보아
온 탓일까 언제부턴가 나는 무서워하기보다는 결말을 다 아는 공
포영화를 다시 보는 관객처럼 거의 무덤덤해지기 시작했다. 다만
그 억울한 목숨들에 내리는 뜻 모를 재앙을 내 입으로는 다 형언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잠시 몸을 떨 뿐.
2
불속 같은 한여름 날 오후
불개미 떼가 비탈길을 가로지르며 기나긴 줄을 만든다.
무슨 까닭인지
장강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그 놈들의 행렬을
거대한 내 발로 뚝 끊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면서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고물고물 하나같이 종종걸음을 쳐도
가만가만 간격을 조절해가는 그 놈들
학교나 제대로 나왔나 모르지!
3
신음한다 나는
이상한 방법으로 거대한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 하는 숨은신과
이상한 충동을 억누르고 고요한 관찰로 일관한 자신 사이에서
아니 빠름과 느림의 거리, 또는 속력과 방향 사이에서
아니 미물과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아니 아니
아무리 몸부림쳐도
끝끝내 제자리로 돌려놓는 어떤 거대한 발길 밑에서
*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일 때 깨닫게 된다.
부모가 되어가지고 자식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이보다 더 큰 슬픔이 또 있을 것인가.
신이 거대한 뜻을 가지고 세상을 통치한다면
때로는 그게 음모 같기도 하고 정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느낄 수도 있으리라.
때로는 자비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인간을 욥으로 만들어 끊임없이 시험하는 게임 프로그래머 같기도 하다.
넌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어. 어서 무릎 꿇고 기도해!
- 네, 기도할께요, 기도. 그런데......
그것 봐. 아직도 믿음이 부족해 의심을 하잖아. 어서 무릎 꿇고 기도해!
우리 인간이 신을 닮아 기도 대신 엉기는(?) 일로 평생을 보낸다면
여기가 천국일 수 없고 저 지옥 같은 재앙 속에서 신을 원망하며 이 앓는 소리만 하며
살게 될 게다.
힘이 없다는 게 죄가 된다.
할 수 있는 게 기도 밖에 없다는 게 죄가 된다.
죄를 가지고 있다는 게 죄가 된다.
신이여, 이거 너무한 거 아닙니까!
무릎 꿇어야 하고 두손 모아야 하고 고개 숙여야 하고
신음 같은 기도 밖에 드릴 게 없는 우리는 나약한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