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더블린풍 [필립 라킨]

JOOFEM 2014. 11. 10. 23:59

 

 

 

 

 

 

더블린풍 [필립 라킨]

 

 

 

 

 

치장 벽토 골목 아래로,

그 골목 빛이 땜납이고

오후 안개,

경주 안내문과 묵주 위

가게들에 불을 켜는데,

장례 행렬 지나간다.

 

영구차 맨 앞이지만,

그 뒤를 따르는 것은

일단의 가두 매춘부들,

챙 넓은 꽃무늬 모자 쓴,

소매가 양 다리 모양이고,

드레스가 발목까지 내려온,

 

거대한 친근의 기운 있다,

마치 그들이 예우하는 듯,

그들이 좋아했던 사람을 말이다;

몇몇은 서너 걸음 희룽거린다,

스커트를 솜씨 있게 쥐고

(누구는 박수로 박자 맞춘다),

 

그리고 거대한 슬픔의 기운 또한,

그들이 이동해 가는데

목소리 하나 노래한다

키티, 혹은 케이티에 대해,

그 이름 한때

온갖 사랑, 온갖 아름다움 뜻했던 것처럼 들린다.

 

 

 

 

 

 

* 과거엔 영국령이었지만 독립한 나라, 아일랜드의 사람들은 슬픈 눈빛이다.

더블린풍이란 게 혹 슬픈 눈빛을 이르는 말은 아닐까.

우수에 젖었거나 소외감에 빠져 맥주집 끄트머리 탁자에 혼자 앉아

맥주를 들이키는 풍이랄까.

아뭏든 장례의 행렬에서 슬픔의 기운에도 불구하고 애정이 듬뿍 담긴 노래를 부르며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더블린풍.

한 육,칠년전 용인에서 영어를 배운 적이 있다.

로버트라는 아일랜드인이 일기를 검사했었는데 비교적 후한 점수를 주었던 선생이었다.

방과후에는 학생들과 맥주를 마시러 가곤 했는데

한 맥주집에서 주저리주저리 대화를 하다가 옆 좌석에 혼자 술 마시던여자와

갑자기 말을 트더니 반가와서 숨도 안 쉬고 대화를 하였다.

알고보니 아일랜드여자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천안에서 제주도 남자가 제주도 여자를 만난 격이다.

먼 나라에서 한국까지 와서 그것도 용인의 어느 맥주집에서 같은 종족을 만났으니

더블린풍이라 해도 무방하다. 슬픔이 기쁨이 되는 묘한 동질감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