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걸 점심 값이라고 [이성복]
아, 그걸 점심 값이라고
.......................어떤 영혼들은
.......................푸른 별들을 갖고 있다,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어떤 영혼들은…」
................................ [[ [이성복]
어떤 순결한 영혼은 먹지처럼 묻어난다. 가령 오늘 점
심에는 사천 원짜리 추어탕을 먹고 천 원짜리 거슬러 오
다가, 횡단보도 앞에서 까박까박 조는 남루의 할머니에
게 ‘이것 가지고 점심 사 드세요 ’ 억지로 받게 했더니, 횡
단보도 다 건너가는데 ‘미안시루와서 이거 안 받을랩니
다 ’ 기어코 돌려주셨다. 아, 그걸 점심값이라고 내놓은
내가 그제서야 부끄러운 줄 알았지만, 할머니는 섭섭다
거나 언짢은 기색 아니었다. 어릴 때 먹지를 가지고 놀
때처럼, 내 손이 참 더러워 보였다.
* 다른 나라에 가서 호텔에 묵으면 퇴실할 때 1달러나 1유로,
좀 더 기분 내면 2달러나 2유로를 침대에 놓게 된다.
그러고도 아무 거리낌 없지만 한국에서는 천원을 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오천원을 놓을 수 없다.
한국은 체면문화가 강하고 자존감이 커서 그만한 돈에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직장생활 처음 할 때에는 왕고참들이 식당 종업원에게 만원씩 팁을 주는 걸 보고
멋있기도 하였고, 받는 종업원은 지극정성(?)으로 반찬도 더 챙겨주었지만
요즘 만원짜리 한장 주기는 왠지 미안한 게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미안시루와서 그렇다.
돈이 인간의 마음을 치사스럽게 만들긴 해도 자존감을 건드리면
때로 완강히 거절하게도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 젊은이들은 뭐든지 N분의 일인데
그게 떳떳하고 합리적이고 자존감이고 미안시루와서 얼굴 붉힐 일 없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