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안 국밥집 [엄원태]
* 천안 아우내장터에 가면 정말 맛있는 순대국밥집이 있다. 줄서서 먹는 집이고 문앞에는 항상 엿장수가 있다.
골목 안 국밥집 [엄원태]
한동안 점심으로 따로국밥만 먹은 적이 있었다
골목 안의 그 식당은 언제나 조용했다
어린애 하나를 데리고
언제나 방안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여자가
느릿느릿 차려주는 쟁반 밥상을
나는 수배자처럼 은밀히 찾아들어 먹곤 했다
밥을 기다리는 잠시 동안의 그 적요가
왠지 나는 싫지 않았다
한번은 직장 동료와 같이 간 적이 있는데
을씨년스레 식은 드럼통 목로들을 둘러보며
그가 추운 듯 그 적요를 어색해하는 것을 보곤
이후 죽 혼자만 다녔다
가끔씩 국이 너무 쫄아들어 짜진 것을 빼고는
콘크리트처럼 딱딱한 채 언제나 적당히 젖어있던
그 낡은 적산가옥의 쓸쓸한 흙바닥까지 나는 사랑하였다
그 식당이 결국 문을 닫고
아이와 함께 늘 어두운 방안에 웅크리고 있던 여자가
어디론가 떠나버린 뒤, 집수리가 시작된 철거 현장에서
나는 어린 딸아이의 끊임없는 웅얼거림과 가끔씩
덮어주듯 나직이 깔리던 젊은 여자의 부드러운 음성이
허물어져 가는 회벽 사이에서 햇살에 부서지는 것을 보았다
눈이 부셨다
* 아마 누구게나 국밥집에 대한 추억이 있을 법하다.
21세기로 바뀔 즈음 술과 커피를 파는 카페를 자주 다녔다.
천안, 어느 삼거리의 모퉁이집이었는데 오동통한 너구리같은 여자가 카푸치노를 잘 만들어왔다.
어디서 왔어요, 물으니 미아리요,한다.
어, 난 장위동인데,했더니 옆동네네요,한다.
이후로 카푸치노를 엄청 마셨다.
이천이년 월드컵을 할 때 스페인인지 이탈리아인지 한국이 물리치던 날,
카페에서는 완전 축제분위기였고 서로 부둥켜안고 난리부르스를 추었다.
어떤 손님이 여기꺼 제가 다 냅니다,라고 외쳐서 맥주와 커피를 공짜로 먹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얼마 후 장사가 안되는가 했더니 업종을 바꿔 황태해장국집을 차렸다.
카푸치노에 꽂혔던 입맛이 황태해장국에는 영 아니어서 발길을 끊게 되었고
몇달 안되어 문을 닫아버렸다.
오동통한 너구리같은 그 여자를 이후 한번도 보지 못했다.
카푸치노를 그 여자만큼 맛있게 만드는 카페를 여태 찾질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