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발코니에서는 괜찮아 [이수명]

JOOFEM 2014. 12. 21. 21:51

 

                                                                                                                        김성호 그림

 

 

 

 

 

발코니에서는 괜찮아 [이수명]

 

 

 

 

 

 

  발코니에서는 괜찮아 잠이 흔들려도 괜찮아 흔들릴 때마다 괜찮아 발코니에 서면

건축을 잃어버린다. 건축이 없어서 발코니에서는

  잠을 잘 수 있다. 발코니에서 겹쳐지는 잠은 인기척이 없다. 몸이 잠을 휘감고 한

없이 부풀어가고 몸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

  나는 아무것도 일깨우지 않는다. 고개를 저을까 마음이 아플까 돌처럼 빈 들판에

박혀 있어서 꽃들은 몸을 보인다.

  욕이 흘러 나온다. 발코니에서 뛰어내려도 괜찮아 두 발을 동시에 들고 조금만 더

동시에 태어나는 거야 여기와 거기로 동시에 뛰어내리는 거야

  바람은 얼마나 단단한가 새들이 날아가 부딪힌 바람은 얼마나 부드러운가 새들을

떨어뜨리는 바람은 얼마나 안전한가

  발코니에서는 괜찮아 한 걸음 더 나아가도 괜찮아 어디선가 사람들이 기우뚱 떨어

진다. 나는 어느 모를 곳을 향해 한사코 기울어진다. 건축이 재빨리 지나간 뒤

 

 

 

 

 

 

 

 

* 고소 공포증이 있는 나는 사층 이상의 건물에서는 늘 아찔하다.

발코니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것은 괜찮지 않다.

그것은 떨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고

누군가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기도 하다.

혹은 발코니는 튼튼한가,라는 건축에 대한 불신일 수도 있다.

믿음이 안 가서 느끼는 두려움인 셈이다.

건축은 결코 안전하지 않으므로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

선진국은 무너지지 않는다?

개미나 벌이 이루는 사회는 영원하다?

사회안전망은 믿을 수 있다?

해는 동쪽에서만 뜬다?

개연성으로 보면 그 어느 것도 진리가 되지 못한다.

발코니에서는 괜찮다는 말은 발코니에서도 괜찮지 않다는 말로 들린다.

견고함이 없는 지금의 세상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