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에서는 괜찮아 [이수명]
김성호 그림
발코니에서는 괜찮아 [이수명]
발코니에서는 괜찮아 잠이 흔들려도 괜찮아 흔들릴 때마다 괜찮아 발코니에 서면
건축을 잃어버린다. 건축이 없어서 발코니에서는
잠을 잘 수 있다. 발코니에서 겹쳐지는 잠은 인기척이 없다. 몸이 잠을 휘감고 한
없이 부풀어가고 몸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
나는 아무것도 일깨우지 않는다. 고개를 저을까 마음이 아플까 돌처럼 빈 들판에
박혀 있어서 꽃들은 몸을 보인다.
욕이 흘러 나온다. 발코니에서 뛰어내려도 괜찮아 두 발을 동시에 들고 조금만 더
동시에 태어나는 거야 여기와 거기로 동시에 뛰어내리는 거야
바람은 얼마나 단단한가 새들이 날아가 부딪힌 바람은 얼마나 부드러운가 새들을
떨어뜨리는 바람은 얼마나 안전한가
발코니에서는 괜찮아 한 걸음 더 나아가도 괜찮아 어디선가 사람들이 기우뚱 떨어
진다. 나는 어느 모를 곳을 향해 한사코 기울어진다. 건축이 재빨리 지나간 뒤
* 고소 공포증이 있는 나는 사층 이상의 건물에서는 늘 아찔하다.
발코니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것은 괜찮지 않다.
그것은 떨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고
누군가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기도 하다.
혹은 발코니는 튼튼한가,라는 건축에 대한 불신일 수도 있다.
믿음이 안 가서 느끼는 두려움인 셈이다.
건축은 결코 안전하지 않으므로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
선진국은 무너지지 않는다?
개미나 벌이 이루는 사회는 영원하다?
사회안전망은 믿을 수 있다?
해는 동쪽에서만 뜬다?
개연성으로 보면 그 어느 것도 진리가 되지 못한다.
발코니에서는 괜찮다는 말은 발코니에서도 괜찮지 않다는 말로 들린다.
견고함이 없는 지금의 세상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