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끝내 하지 못한 질문 [박상천]

JOOFEM 2015. 3. 27. 21:16

 

 

 

 

 

 

끝내 하지 못한 질문 [박상천]

 - 봄날의 목월 생각

 

 

 

 

지금은 윤사월도 아니고,

문설주에 기대어 있는

외딴 집 눈먼 처녀도 보이지 않지만

매년 이맘때쯤이면 날리는

당신의 송홧가루.

오늘은 비가 내려

고인 밧물 위에 띠를 이룬

노란 송홧가루가 곱습니다.

 

송홧가루를 볼 때마다

이제 막 문학개론 수업이 끝난,

70년대 어느 봄날의

행당 언덕이 떠오릅니다.

그 풍경 속에는

맑은 햇살 속에 언덕에 오르는

당신의 구부정한 어깨가 보이고

수업시간에 끝내 하지 못한

질문을 가슴에 품고

당신을 부를까 말까 망설이며,

발자국 소리를 내는 것조차 죄스러운 듯

조심스레 당신 뒤를 따라가고 있는

한 대학 신입생의 모습도 보입니다.

 

고인 빗물 위에 띠를 이루어 몰려 있는

송홧가루 위로 또 비가 내립니다.

저는 오늘,

내리는 빗줄기를 문설주 삼아 기대어

부드럽고 나직한 목소리의

당신 강의를 다시 듣고 있습니다.

끝내 하지 못한 질문은 아직 남아 있지요.

 

 

 

 

* 학창시절에 중앙도서관에 푹 파묻혀 박목월 전집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시도 시지만 가정적인 모습이 담긴 글들을 읽으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시인을 알게 되는 기쁨을 누렸다.

딸의 손을 잡고 동네를 거닐던 순박한 아버지의 모습도 떠오른다.

올해가 박목월시인의 탄생 100주년이라고 한다.

수많은 제자들, 그리고 심상지를 통해 등단한 시인들이 꽤 많아서

많은 행사가 있다고 한다.

심상지가 없어져서 무척 아쉬웠는데 다시 부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100주년 기념 헌정 시집 '적막한 식욕'에서 한 편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