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바짝 붙어서다 [김사인]
JOOFEM
2015. 6. 6. 09:04
바짝 붙어서다 [김사인]
굽은 허리가
신문지를 모으고 상자를 접어 묶는다.
몸뻬는 졸아든 팔순을 담기에 많이 헐겁다.
승용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
바짝 벽에 붙어선다
유일한 혈육인 양 작은 밀차를 꼭 잡고.
고독한 바짝 붙어서기
더러운 시멘트 벽에 거미처럼
수조 바닥의 늙은 가오리처럼 회색 벽에
낮고 낮은 저 바짝 붙어서기
차가 지나고 나면
구겨졌던 종이같이 할머니는
천천히 다시 펴진다.
밀차의 바퀴 두개가
어린 염소처럼 발꿈치를 졸졸 따라간다.
늦은 밤 그 방에 켜질 헌 삼성 테레비를 생각하면
기운 싱크대와 냄비들
그 앞에 선 굽은 허리를 생각하면
목이 멘다
방 한구석 힘주어 꼭 짜놓았을 걸레를 생각하면.
* 가난한 나라는 식구를 늘려야 먹고 살므로
아이를 많이 낳는다.
좀 먹고 사는 나라는 적게 낳거나 아예 결혼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좀 먹고 사는 나라는 점점 노인이 많아지고
노인은 의지할 데 없는 소외계층이 되어간다.
어쩌다 한 켠에 바짝 붙어서는 세대가 된 것일까.
아직도 시골에서는 칠십 전의 노인은 노인 축에 들지 않는다.
그들은 꼼지락거려 먹고 사는 경제인구이지만
도시는 다르다.
노인들이 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아
동네 골목의 파지를 모으는 노인이 넘쳐나고 경쟁도 치열하다.
회사 경비들은 육십육세,
청소하는 아주머니는 육십오세를 고용했다.
아직 걸레를 힘주어 짜지 않아도될 힘을 가지고 있다.
근무 설 때 영어 테이프를 들을 만큼 힘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 힘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아직 노인이 아니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