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에 대한 반성문 [복효근]
새에 대한 반성문 [복효근]
춥고 쓸쓸함이 몽당빗자루 같은 날
운암댐 소롯길에 서서
날개소리 가득히 내리는 청둥오리떼 본다
혼자 보기는 아슴찬히 미안하여
그리운 그리운 이 그리며 본다
우리가 춥다고 버리고 싶은 세상에
내가 침 뱉고 오줌 내갈긴
그것도 살얼음 깔려드는 수면 위에
머언 먼 순은의 눈나라에서나 배웠음직한 몸짓이랑
카랑카랑 별빛 속에서 익혔음직한 목소리들을 풀어놓는
별, 별, 새, 새, 들, 들, 본다
물 속에 살며 물에 젖지 않는
얼음과 더불어 살며 얼지 않는 저 어린 날개들이
건너왔을 바다와 눈보라를 생각하며
비상을 위해 뼈 속까지 비워둔 고행과
한 점 기름기마저 깃털로 바꾼 새들의 가난을 생각하는데
물가의 진창에도 푹푹 빠지는
아, 나는 얼마나 무거운 것이냐
내 관절통은 또 얼마나 호사스러운 것이냐
그리운 이여,
네 가슴에 못 박혀 삭고 싶은 속된 내 그리움은 또 얼마나 얕은 것이냐
한 무리의 새떼는 또
초승달에 결승문자 몇 개 그리며 가뭇없는
더 먼 길 떠난다 이 밤사
나는 옷을 더 벗어야겠구나
저 운암의 겨울새들의 행로
를 보아버린 죄로
이 밤으로 돌아가
더 추워야겠다 나는
한껏 가난해져야겠다
* 갑자기 반성모드로 돌변해야할 것 같다.
더 춥고 더 가난하고 더 아픔을 참고
이만한 것도 호사라 말하며 불평 불만 제로!
새에게서나 깨우침을 얻어야 하는 인간은 얼마나 비루한가.
반성문 열 장을 쓰고도 두 장은 더 써야할 테다.
가난이라는 대목에서 손에 붙어다니는 핸드폰을 째려본다.
S3인 이 핸드폰은 벌써 삼년째 쓰고 있다.
요즘은 신형이 S6이니까 바꿀만도 한데
더 가난해져야겠다,는 시인의 결의를 보니
S9이나 나와야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잠시나마 사치스런 생각을 했으니 반성문 한 장 추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