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지기 내 동무 [한승원]
* 오랜만에 인사동 '다사랑'에 앉아 대추차를 마셨다. 진하게 나오던 대추차, 이번엔 조금 묽어졌다.
그냥 추억으로 마셨다.
백년지기 내 동무 [한승원]
치기 어린 시와 풋사랑에 질퍽하게 젖어 살던 내 스무 살 시절
한밤중에 부르는 소리 있어
골목길 걸어 앞산 잔등 넘어가면
그놈이 밤안개 너울 쓰고 달이랑 별이랑 바람이랑
백사장이랑 갯바위랑을 짓궂게 희롱하며 너울거렸습니다.
포구 주막의 까맣게 그은 와사등 아래서 쌉쌀한 막걸리 한 됫병에
가오리의 지느러미 안주로 먹고 모래밭으로 나와 혀 굽은 소리로
이 자식아, 왜 불러냈어? 하면 그놈은
싱긋 웃으며 덩실덩실 춤만 추었습니다.
머리칼 희어지고
그 시절의 시와 사랑 안개구름 속으로 사위어간 이즈음도
무시로 불러내는 소리 따라 발밤발밤 여닫이바다 모래밭까지 걸어 나가
이 자식아 왜 자꾸 불러내? 하면 그놈은
마찬가지로 싱긋 웃으며 어깨춤 엉덩이춤만 움씰거립니다.
그놈의 깊은 속뜻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하여 나는 물 좋은
농어회나 낙지 안주에다가 술 한 병 들이켜고,
코 찡긋거리고 어깨 움씰거리며
그놈의 춤을 그냥 즐길 수밖에요.
* 시사랑 회원들과 반짝모임을 가졌다.
회원들이 가져온 시집은 삼십여권.
대개 서너권씩 선물로 받고 돌아갔다.
나는 한승원의 '달 긷는 집'과 박정대의 '내 청춘의......', 박준의 '당신의 이름을......'을 받았다.
그중에 한승원시인의 '백년지기 내 동무'를 올린다.
시사랑카페가 16년 밖에 되지 않아 백년지기는 아니지만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인 시와 사랑은 백년 못지 않다고 본다.
누가 불러내도 싱긋 웃으며 소주 한 잔, 차 한잔, 시 얘기
머리칼이 희어져도 끝이 없다.
함께 즐기기가 쉽진 않지만 아주 가끔씩이라도 만나고 소통하고
시민으로서 춤추듯 즐기면 좋겠다.
詩는 곧 우리의 삶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