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백년지기 내 동무 [한승원]

JOOFEM 2015. 11. 15. 20:15

 

          * 오랜만에 인사동 '다사랑'에 앉아 대추차를 마셨다. 진하게 나오던 대추차, 이번엔 조금 묽어졌다.

             그냥 추억으로 마셨다.

 

 

 

 

 

백년지기 내 동무 [한승원]





치기 어린 시와 풋사랑에 질퍽하게 젖어 살던 내 스무 살 시절

한밤중에 부르는 소리 있어

골목길 걸어 앞산 잔등 넘어가면

그놈이 밤안개 너울 쓰고 달이랑 별이랑 바람이랑

백사장이랑 갯바위랑을 짓궂게 희롱하며 너울거렸습니다.


포구 주막의 까맣게 그은 와사등 아래서 쌉쌀한 막걸리 한 됫병에

가오리의 지느러미 안주로 먹고 모래밭으로 나와 혀 굽은 소리로

이 자식아, 왜 불러냈어? 하면 그놈은

싱긋 웃으며 덩실덩실 춤만 추었습니다.


머리칼 희어지고

그 시절의 시와 사랑 안개구름 속으로 사위어간 이즈음도

무시로 불러내는 소리 따라 발밤발밤 여닫이바다 모래밭까지 걸어 나가

이 자식아 왜 자꾸 불러내? 하면 그놈은

마찬가지로 싱긋 웃으며 어깨춤 엉덩이춤만 움씰거립니다.

그놈의 깊은 속뜻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하여 나는 물 좋은

농어회나 낙지 안주에다가 술 한 병 들이켜고,

코 찡긋거리고 어깨 움씰거리며

그놈의 춤을 그냥 즐길 수밖에요.








* 시사랑 회원들과 반짝모임을 가졌다.

회원들이 가져온 시집은 삼십여권.

대개 서너권씩 선물로 받고 돌아갔다.

나는 한승원의 '달 긷는 집'과 박정대의 '내 청춘의......', 박준의 '당신의 이름을......'을 받았다.

그중에 한승원시인의 '백년지기 내 동무'를 올린다.

시사랑카페가 16년 밖에 되지 않아 백년지기는 아니지만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인 시와 사랑은 백년 못지 않다고 본다.

누가 불러내도 싱긋 웃으며 소주 한 잔, 차 한잔, 시 얘기

머리칼이 희어져도 끝이 없다.

함께 즐기기가 쉽진 않지만 아주 가끔씩이라도 만나고 소통하고

시민으로서 춤추듯 즐기면 좋겠다.

詩는 곧 우리의 삶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