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사랑한 적 없다 [복효근]

JOOFEM 2016. 2. 24. 12:00


                                                                       커피콩을 싹 틔워 책상에서 잘 자라고 있는  커피나무.







사랑한 적 없다 [복효근]






다시 같은 자리에 돋는 새잎이란 없다

이미 새잎이 아니지

낯선 자리 비켜서

옛 흉터를 바라보며 지우며 새잎은 핀다

 

이전의 사랑은 상처이거나 흉터다

이후의 사랑도 그러할 것이므로

사랑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조금 비켜서

덤덤히 바라볼 수 있는 눈빛으로

나무의 새순은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싹튼다

 

제 형체와 빛갈과 향기를

지우고, 지고 부정하고 배반하고

새잎은 비로소 새잎이다

 

내 너를 사랑한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사랑한 적 없다

오늘은 내 어느 부위에 상처를 남겨두랴

 

엄살 피우지 말자

남은 날 가운데 가장 새것이어서

우리 세포는 너무 성하다

흉터 따위를 기억하는 것은 사랑도 아니다

 

지금 네가 마지막 첫사랑이다






* 사랑의 상처가 있었을 무렵,

손가락보다 작은 커피나무 화분을 하나 샀다.

몇년을 키웠더니 지금은 내 키보다 크게 자랐다.

손바닥보다 큰 잎들이 나고 지고를 반복하면서, 바라보면 흐뭇할 만큼 자랐다.

맞다. 커피나무를 사랑한 적 없다.

떨어진 잎은 버리고 새로 돋아난 잎은 손바닥으로 대보면서

지금 네가 마지막 첫사랑이구나, 속삭이게 된다.

나무를 바라보는 나도 나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