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물 묵어라 [전동균]

JOOFEM 2016. 6. 9. 07:27


                                                                                                  의사의 왕진, 토마스 파에드 그림






물 묵어라 [전동균]






밤새 앓으며 잠을 못 잔 아내와

늦은 아침을 먹는다

삶은 고구마와 바나나를


아내는 지금

제 속의 여자를 떠나보내는 중이다

입술은 갈라지고

얼굴은 퉁퉁 붓고

갑자기 사막으로 쫓겨난 하마 같다


그래도 당신에겐

첫사랑과 어머니가 함께 있어!

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색도 않는다


그냥 바라보다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다가


물 묵어라,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물 잔을 건넬 뿐






* 가족이 아플 때에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의사의 입술만 쳐다볼 뿐이다.

내가 누웠어도 마찬가지로 가족을 말 없이 바라볼 뿐이겠다.

툭 던지는 말 한 마디, 혹은 슬쩍 잡아주는 손이 전부일 수 있다.

가족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가족 없이 홀로 사는 이에게는 투박한 말조차 들을 수 없으니

삶 자체가 슬픈 거다.

가끔 티비에서 독거노인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가족의 사랑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 묵어라! 이 한마디가 얼마나 좋은 말인가.

얼마나 사랑이 넘치는 말인가.

.

아프지 마라! 그러면 됐다.(이건 무슨 노래의 가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