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방 [김명서]
주페가 다니는 회사에서 시낭송 모임을 가졌다. 그늘이 없어서 내 방에서 낭송.
하얀 방 [김명서]
그 사람
머리에 장착된 블랙박스를 연다
소뇌로 가는 고화질 영상에 전원이 꺼져있다
건전지를 끼우고
다큐멘터리 형식을 써서 아주 먼 거리를 돌아가 본다
IMF, 고주파 신호를 받고
8차선 도로에서 불법 유턴을 하다가
머리에 낙뢰를 맞은 것이다
압박붕대로 칭칭 감은
어둠 저 아래
교감하는 세계가 있는지 실실 웃음이 흘러나와
포르말린 냄새와 섞인다
맞은 편
각혈 같은 오열이 쏟아지고
침상 한 채
흰 천에 덮여 영안실로 끌려간다
대기는 암전된다
환자 몇은 희곡의 지문을 연기하는
시체실, 대사가 없다
* 7월 9일 토요일, 날씨는 폭염이라 삼십삼도
천안에서 시사랑카페의 번개팅이 있었다.
경기도 광주에서 천안까지 서른 여섯살 청년이 번개팅에 왔다.
삼십년전 교통사고로 몸이 많이 부서졌음에도 건장한 체격이다.
밤에는 주유소에서 일하고 낮에는 자는 지루한 일상인데
일탈을 꿈꾸어본 걸까, 천안까지 혼자 찾아왔다.
모임장소가 천안아산역인데 천안역에서 혼자 덩그마니.
우여곡절 끝에 번개팅에 합류하여 커피 한잔 같이 마시고
주페가 일하는 회사에 가서 시낭송 모임을 가졌다.
김명서시인의 시집들을 다 한권씩 들고 있었고 청년은 '하얀 방'을 낭송했다.
아주 짧은 순간에 시 한 편을 골랐는데 자신에게 딱 어울리는 시를 골랐다.
대단한 블랙박스를 가지고 있는 청년이다.
저녁 여섯시 사십분, 우리는 오리 진흙구이를 먹으러 갔다.
그런데 시우님이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더니 광주까지 가는 버스가 일곱시 이십분이 막차라는 거다.
부랴부랴 콜택시 부르고 시우님은 오리 한마리 포장하고
택시기사에게 돈 만원 쥐어주고 버스 터미널까지 일곱시 십분에 도착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광주 가는 버스를 타고 갔다는 문자를 받았고 오리고기도 잘 먹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 청년은 최두영씨, 닉네임은 codoyo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