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이마 위에 씌어지던 서정시 [이미란]
새들의 이마 위에 씌어지던 서정시 [이미란]
나는 또 생각하는 것이다
영화를 볼 때마다 힘찬 날갯짓으로 솟구치던
새들의 둥근 이마를
그 새들이 차고 날아간 해의 심장 위에 씌어지던
먼 옛날의 서정시를
이제는 사라진 자막 없는 애국가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닿도록 부르던
그 시대의 푸른 서슬 같던 낭만을
세월은 흘러 흘러서 어디로 가나
불빛은 흘러 흘러서 어느 저녁을 서성이나
밤 깊은 거리엔 헐벗은 시간의 발자국이 흩날리고
친구를 잃은 사람들의 무거운 외투는
십이월 간판 밑으로 안개처럼 스며드는데
한 국자의 뜨거운 애사를 간직하지 못한 우리는
도망치듯 가방을 메고 손을 흔들며
가랑잎 같은 택시를 타고
협궤열차를 닮은 전철을 타고
마지막 질주의 투명한 버스를 타고
내일의 안녕을 위해 제 각각의 집으로 사라져간다
새들의 이마 위에 우리는 이제 어떤 시를 써야하나
그 옛날 영화를 볼 때마다 애국가를 따라 부르며
가슴 벅차게 의자를 당기던 시절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그 시절의 울분을 달래주던 가난한 낭만의 세월과
청춘의 자막 뒤로 흘러가버린 눈물 같은 서정시를
이제는 무엇이라 이름 붙여 불러야 하나
* 한때 386세대라는 세대가 있었다.
국민교육헌장을 달달달 외우며 자랐던 세대.
삼십 나이가 사십이 되며 486이 되었다가
오십 나이가 되어 586이 되어버린 세대.
가난했던 시절이지만 수제비와 국수를 먹으며
새둥지 같은 집에서 행복하게 자랐던 세대였고
이제는 자녀를 시집장가 보내는 나이가 된 세대다.
이 시는 아마도 586세대가 공감하는 시일 게다.
우리가 사랑했던 서정시는 어느덧 찾아볼 수 없는 시가 되어
마음이 허전해진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청춘의 자막 뒤로 사라져가는 서정시가 그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