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공포 [오은]

JOOFEM 2017. 2. 9. 15:29


                                                                         Tod und Mädchen (Death and the Maiden), 1915





공포 [오은]







밤에 손톱을 깎으면 안 된단다

귀신이 해코지를 할 거야


밤에 별이 깜빡거리면 강풍이 분단다

유혹하는 것들은 다 위험하지


밤하늘이 유독 맑으면 된서리가 내린단다

정수리에 힘을 주고 또박또박 걸어야 해


할머니의 비밀은 모두 밤에 있었다


밤에 어둔 길을 혼자 가면 안 된다

뒤통수는 항시 조심해야 해


낮은 흘러가는 것

밤은 다가오는 것


낮은 불발의 연속이었다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밤은 정전되어 있었다

닥쳐오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리 없는 공포탄이

사방에서

폭죽처럼 터지고 있었다


밤에는 작게 이야기해야 한단다

밤말을 들은 쥐가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몰라


비밀들이 아우성치며

베갯속 사이를 앞다투어 메우고 있었다








* 설을 앞둔 날, 밤에 자면 눈썹이 쉰다고 할머니는 말하셨다.

아이들은 정말 눈썹이 하얘질까 무서워 늦은 밤까지 눈을 깜빡거렸다.

- 너, 엄마말 안 들으면 놓고 간다.

엄마는 말 안 듣는 아이에게 유기불안을 조성하며 공포감을 준다.

부모세대는 늘 억압을 하며 자식세대를 훈계하려고 한다.

심지어 하나님 아버지도 십계명으로 억압하긴 한다.

뭐 하지마라~ 뭐 하지 마라

아홉가지가 하지 마라,이고

유일한 한가지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이다.

사실은 하라는 것도 하지 마라처럼 억압의 일종이다.

자식이 부모가 되어서야 이 공포는 사라질까.

하지만 자식의 자식은 또 부모에게 억압을 받으며 공포에 떠는 건 아닐까.

가끔 마트에서 뭘 사달라고 징징대는 아이를 부모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가는 모습을 본다.

아이는 더 크게 소리내며 운다.

밤말을 들은 쥐가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데

이느므 억압과 공포는 끝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