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수녀원엔 동치미가 맛있습니다 [문성해]

JOOFEM 2017. 7. 10. 15:52








수녀원엔 동치미가 맛있습니다 [문성해]






  봉쇄수녀원 뒷문에 각시나방처럼 붙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곳을 들여다봅니다

  거기엔 아침이면 동그랗게 동그랗게 도넛 같은 종소리를

구워내는 종탑이 있고

  밀가루 반죽처럼 천천히 부푸는 흰 성당이 있고

  그 뒤편에는 여기숙사처럼 말쑥한 숙소가 있습니다

  나는 장바구니를 든 채 이 문 붙잡고 서서

  어느 길에선가 나를 떠난 저 꿈꾸는 표정들을 구경할 때

가 많습니다

  머릿수건 속의 머리는 긴 머리인지 커트 머리인지

  묵언수행중엔 정말 용케 기침들도 안 하시는지

  더 궁금한 건

  목욕탕에서 그니들도 나처럼 수건으로 거기를 가릴까 하

는 거

  나는 그녀들보다 더 오래 살고 조금 더 뻔뻔스럽지만

  그니들이 언니나 이모나 되는 것처럼 기댈 때가 많아져

  오늘은 밀짚모자와 몸뻬바지들이 재재거리며 와서는

  풀도 뽑아주고 물도 와서 주고 가는

  저 고랑진 밭의 무 한 뿌리로 박혀 있고 싶습니다

  가을벌레들의 쪼그린 무릎 울음소리와

  구중충한 빗소리에

  실팍해지는 아랫도리들처럼

  내 밑동도 하얗게 살이 오르면

  싸락눈이 맵차게 내린 어느 날

  걷어붙인 새파란 손목들에게 썩둑썩둑 썰려서

  겨우내 기도처럼 익어갈 것입니다

  소금물이 살강살강 배어드는

  깊은 항아리 속에서



                         -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문성해시집, 문학동네, 2016











* 같은 세상에 살지만 달라보이는 다른 문화가 궁금할 때가 있다.

성당에서는, 군인들은, 시인들은, 초등학교 선생님은,,,,,,

수녀원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지만

수녀의 머리가 궁금하고 목욕탕에서는 어찌 하는지도 궁금하고...

어느 집단이든 어느 문화이든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동치미무에 살강살강 배어드는 소금간이 짭짤하고 맛이 있듯이

생활속에서의 삶은 동치미무처럼 살강살강 땀이 배어있고 땀냄새가 나고

삶 자체가 기도와 같은 것이다.

어느 누구의 삶도 기도드리지 않는 삶은 없다.


밥 해먹고 기도하고, 일하면서 기도하고, 하루를 보내고 씻으며 기도하고

동치미처럼 시원하고 맛있는 삶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