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기억의 갈피로 햇빛이 지나갈 때 [권대웅]

JOOFEM 2017. 11. 14. 06:58








기억의 갈피로 햇빛이 지나갈 때 [권대웅]






햇빛이 각도를 바꿀 때마다 늑골이 아팠다

온몸 구석구석 감추어져 있던

추억 같은 것들이 슬픔 같은 것들이

눈이 부셨나보다 부끄러웠나보다


접혀 있던 세월의 갈피, 갈피들이

어느 날 불쑥 펼쳐져

마치 버려두고 왔던 아이가 커서 찾아온 것처럼

와락 달려들 때가 있다


문득 돌쩌귀를 들추었을 때

거기 살아 꿈틀거리는 벌레처럼

지나간 모든 것들은 멈춘 것이 아니라

남겨진 그 자리에서 다른 모습으로

성장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물지 않고 살아 있는 생채기로

시린 바람이 지나가듯이 자꾸 옆구리가 결렸다

기억의 갈피갈피 햇빛이 지나갈 때

남겨진 삶들이 불숙불쑥 튀어나올 때



                 - 나는 누가 살다 간 여름일까, 문학동네, 2017







* 티비의 한 토크쇼에 김희선이라는 동명인들이 여럿 등장해

자신의 삶을 얘기했다.

김희선,하면 예쁘기로 소문난 탤런트이지만 지금 스무살을 갓넘은 아이들은 모르는 사람이다.

각자의 삶을 얘기하면서 눈물도 보이고 기억속의 생채기를 되새기며

바닥에서 다시 치고올라온 자신들의 일기를 보여주는 프로다.

예쁜 김희선이라고 슬럼프가 없었을까마는 무릇 누구나 생채기가 덕지덕지 붙어있을 게다.

좋았던 기억이 많으면야 행복한 사람이지만

대개 기억으로 떠오르는 것은 생채기 같은 슬픔이라고 보여진다.

하지만 햇빛이 각도를 바꿔가며 샤방샤방 비춰줄 때

그것이 힘이 되고 용기를 준다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눈물도 햇빛을 받을 때 빛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