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만원 지하철에 나방 한 마리 날아올랐다 [허연]

JOOFEM 2017. 11. 30. 09:26








만원 지하철에 나방 한 마리 날아올랐다 [허연]







지친 밀랍 인형들 틈으로

나방 한 마리 날아올랐다

은혜처럼, 혹은

다시 찾은 영혼처럼


언제 왔니

왜 왔니


문득, 어느 새벽안개 속에서

가느다란 나무 사이로

멀어져가던

당신을 생각했다


물웅덩이에 비친

얼굴을 함께 바라보며

물은 악마처럼 검은데

우리만 하얗다고 웃던

그날이 생각났다


점을 찍듯 나방은

내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흐트러지지 않은 채

나방은 그렇게

기억을 불러내고 있었다


우린 나쁜 번호를 뽑았던 거야


녹초가 되어 살아있는 지하철에서

나방이 내 어깨를 다독거렸다


                    - 월간 태백 12월호, 2017







* 늦은 가을의 어느날, 벤치에 앉았는데

몇개 남지 않은 잎사귀중 하나가 낙엽이 되어

무릎에 살포시 앉아줄 때,

어, 이놈이 작업을 거네!

기쁨을 주는 낙엽 한 장처럼

지옥철 속에서 나방 한 마리가 어깨에 앉아

정신을 아득하게 해준다는 얘기렸다.

먼 전생에 나와 인연이라도 있었던 거니?

내 사무실 책상에 늘 찾아와 깡총거리는 깡총거미처럼

무슨 사연이라도 전해줄양 교감을 나누자는 거니?


때로 소소한 일상에 찾아와 주는 위로 같은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