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2월의 방 [권대웅]
JOOFEM
2018. 2. 5. 12:35
잔디밭이 흰눈으로 덮인 이곳은 회사 정원.
2월의 방 [권대웅]
비틀거리며 내려오는
한줌 햇빛이 박하사탕 같다
환해서 시린 기억들
목젖에 낮달처럼 걸려
봄바람마저 삼켜지지 않을 때가 있다
고요속에 있던 그늘의 깊은 우물로
돌멩이 하나가 떨어지는 소리
나뭇가지에 쌓인 눈의 무게를 못 이겨
쩡! 하고 부러지는 소나무의 이명이
온 산을 메아리로 돌다가
내 몸을 지나갈 때 나는 들었다
생이 버티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낮에 뜬 반달이 겨울 들판에 있는
작은 오두막집 같다
구름이 살고 있는 집
정처 없이 가난했던 사랑은
따뜻한 날이 와도 늘 시리고 춥다
세상에 봄은 얼마나 왔다 갔을까
바람 속에서
엿장수 가위질 같은 소리가 들린다
째깍째깍 오전 열한 시의 적막한 머리카락이
혼자 겨울을 난 방에 꿈틀거린다
- 나는 누가 살다간 여름일까, 문학동네, 2017
* 작년에는 눈이 참 많이 내렸고
회사 정원에 소나무 팔십그루중 열그루가 눈의 무게때문에 쩡!
하고 부러져서 겨울이 끝나고 긴 장대에 톱을 매달아 슬근슬근 톱질을 해서 잘라냈다.
버틸 수 없다면 부러져 떨어져야 하는데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가난한 사랑.
올해는 눈이 오지 않는 2월이겠지만 시리고 춥다.
입춘이라고 실내에서는 이팝나무 모종에서 새싹이 돋고
게발선인장은 빨간 꽃봉오리를 피운다.
곧 꿈틀거릴 게 천지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