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미인 [장이지]

JOOFEM 2018. 7. 20. 12:22









미인 [장이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지만,

급식비를 아끼느라

나는 우유가 먹기 싫다고

어머니께 거짓말을 하였다,

그것은 또 어머니의 깨알 같은 전설이 되었지만,

그 부끄럽기만 한 가난은 그때부터 사무쳐

나는 내 빈상의 얼굴이 싫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나 잘 먹는 여자의 얼굴.

얼마 전 나는 이름만 아는 후배 하나를 데리고

노상 가던 식당보다는 더 좋은 식당에 가서

후배의 그 먹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엇이나 잘 먹는 여자를 보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


그러나, 그러나

좀 펴지나 싶더니

중년은 정말 하잘것없다.

입에서 단내가 나지 않으면 하루가 끝나지 않고

반성문 쪼가리도 없이 허둥지둥 삭아간다.


어머니,

인생이 원래 이런 거예요?


                            - 레몬옐로, 문학동네, 2018






* 십년전쯤 독일 출장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때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도서전을 하던 때라

한국의 출판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비행기에 많았다.

하필 나는 세자리의 가운데에 앉았고 통로쪽에 젊은 여자가 앉았다.

도서전에서 얻은 팜플렛을 뒤적거리는 것으로 보아

출판업계에 종사하는 사람 같았다.

첫번째 기내식이 나왔을 때 이 여자는 고추장에 쓱쓱 비벼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먹어치웠다.

나는 그 높은 공중에 떠서 새도 아닌데 무엇을 먹을까,

플라스틱 포크로 도시락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녀의 맛있는 저작 소리가 그칠 때 의자가 제껴지더니 쌔근쌔근 잠드는 게 아닌가.

허허, 밥을 잘 먹는 여자가 잠도 잘 잔다.

덕분에 나는 그녀가 깰때까지 화장실도 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