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장마 - 태백에서 보내는 편지 [박준]
JOOFEM
2019. 1. 6. 21:04
장마 - 태백에서 보내는 편지 [박준]
그곳의 아이들은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제 몸통보다 더 큰
울음을 낸다고 했습니다
사내들은
아침부터 취해 있고
평상과 학교와
공장과 광장에도
빛이 내려
이어진 길마다
검다고도 했습니다
내가 처음 적은 답장에는
갱도에서 죽은 광부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질식사나 아사가 아니라
터져나온 수맥에 익사를 합니다
하지만 나는 곧
그 종이를 구겨버리고는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었습니다
-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학과 지성사, 2018
* 작년에 직원중에 부친상을 당한 이가 있어
현장 간부들을 태우고 태백을 간 적이 있다.
아산에서 가기엔 좀 먼 곳이었다.
처음 가본 태백인데 낯설기도 하고 도착할 때가 저녁 어스름이라 길을 헤매이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인구가 삼만명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아마도 광산이 수명을 다해 광부들이 다 떠나서 그렇겠지,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장례식장이 세군데가 있다고 했다.
오십오만명의 천안도 세군데밖에 없는데 인구 삼만명에 세군데라니.
아마도 광부들이 많이 살았을 옛날에는 인구도 많아서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폐광이 된 그곳에는 아직도 장마가 지면 검은 물들이 흘러다니려나.
이제는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다,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