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풀꽃 [위선환]

JOOFEM 2019. 4. 8. 17:17







풀꽃 [위선환]





  언덕과 언덕 너머 들판에서 시선을 거두어들인다 가까이

와 있을 것이므로 이쪽 풀밭에다 햇살을 모으고 흙을 골라

두었다 뿌리내릴 자리라 해야 고작 한 줌 흙인 것을…기

다린다 낙엽에 덮인 덤불 밑에 그늘진 씨알의 길이 따로 나

있어서 지난 늦가을부터 풀씨 한 알 굴러오면서 빈 들판에다

귀뚜라미 울음소리 굴리고, 서릿발 사이에는 실낱같은 자국

남기고, 그러고는 겨우내 언 땅에 묻혀서 나를 적막하게 하

더니, 이쪽 풀밭에 볕든 지 여러 날 뒤에야 참으로 작은 풀꽃

한 점 피워 놓는다


  작은 것은 오히려 나이므로, 씨알보다 작으므로, 풀꽃 뒤

로 바라보이는 벌판이 무한하다 어디까지 걸어가야 작은 꽃

하나 피울 수 있는지를, 세상에서 가장 외지고 먼 땅을 향하

내일은 걷게 되는지를,


                           - 나무 뒤에 기대면 어두워진다, 달아실, 2019






* 아직은 이른 아침이 영하인 봄이지만, 그래서 삭막함이 감돌지만

햇볕 잘 드는 가로수 밑 땅에서는 개불알꽃이 피켓을 들고

'날 봐줘! 날 봐줘!' 봄노래를 속삭인다.

작아서, 워낙 작아서 보통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만

나처럼 건빵눈인 사람에게는 금방 들키고야 만다.

밀크로션이라도 바르고 나왔는지 하늘보다 파랗게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