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벚꽃 [이바라기 노리코]

JOOFEM 2019. 4. 24. 12:29







벚꽃 [이바라기 노리코]





올해도 살아서

벚꽃을 봅니다

사람들은 평생

몇 번이나 벚꽃을 보는 걸까요

철이 드는 것이 열 살 정도라면

아무리 많아도 칠십 번쯤

삼십 번, 사십 번인 사람도 부지기수

어쩌면 그토록 적은지

더욱더 더욱더 많이 본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조상들의 시각도

섞여 들어와 겹쳐지고 안개가 드리워진 때문이겠죠

화려한 듯, 요염한 듯, 으스스한 듯

그 어느 쪽이라고도 말하기 힘든 꽃의 빛깔

눈보라처럼 흩날리는 벚꽃 아래를 거니노라면

순간

명승名僧처럼 깨닫게 됩니다

죽음이야말로 일상,

삶은 소중한 신기루임을


                - 여자의 말, 달아실, 2019





* * 일본 현대시의 걸작중 하나로 평가되는 「내가 가장 예뻤을 때」로 유명한

이바라기 노리코는 전후 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여성 시인이다.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이바라기는 시와 수필을 통해 한국 문화를 일본에 알렸을 뿐

아니라 한국어를 직접 배워 동시대 한국 시인들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하기도

하였다. 윤동주의 시와 생애에 대해 쓴 수필은 일본에서 잔잔한 반향을 불러

일으켜 일본 고등학교의 국어 교과서에「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수록

되기까지 하였다. 지금도 일본 각지에서 윤동주를 추모하는 모임이 열리고 있는데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바라기의 이 감동적인 글을 만나게 된다.

                                       (여자의 말, 책표지 뒷면의 글을 옮김)





* 박제영시인의 월요시편지에 등장한 적 있는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워낙 유명한 시이다.

박시인이 잡지, 태백에 자주 그녀의 시와 이야기를 싣곤 했는데 이번에 시집을 발간하였다.

사월 십일 발행분이 내게도 왔다. 보내주신 박제영시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한국문학이 일본에 비교적 많이 전파된 반면 몇몇 소설을 제외한다면 일본문학은 그다지 전파되지 않은 편이다.

가끔 시사랑에 일본시를 올려도 읽는 시민이 적은 걸 보면 아직 감정은 식지 않았나보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문학은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윤동주시인의 영혼이 묻어있는 시편들을 찬찬히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