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극치 [고영민]

JOOFEM 2019. 5. 21. 17:06








극치 [고영민]






개미가 흙을 물어와

하루종일 둑방을 쌓는 것

금낭화 핀 마당가에 비스듬히 서보는 것

소가 제 자리의 띠풀을 모두 먹어

길게 몇 번 우는 것

작은 다락방에 쥐가 끓는 것

늙은 소나무 밑에

마른 솔잎이 층층 녹슨 머리핀처럼

노랗게 쌓여 있는 것

마당에 한 무리 잠자리떼가 몰려와

어디에 앉지도 않고 빙빙 바지랑대 주위를 도는 것

저녁 논물에 산이 들어와 앉는 것

늙은 어머니가 묵정밭에서 돌을 골라내는 것

어스름녘,

고갯마루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우체부가 밭둑을 질러

우리 집 쪽으로

걸어오는 것

 


                               - 사슴공원에서, 창비,2012





* 시사랑이 이십년전에는 이십,삼십,사십대가 주류를 이루었다.

특히 이십대.

지금은 사십,오십,육십대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그만큼의 세월동안 후배들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거다.

그러니 십년전이 극치였을 수도 있고

지금이 극치일 수도 있다.

앞으로 점점 회원들은 나이를 더해가고

페이스북이나 다른 종류의 세계로 옮겨가서

먼 미래에는 명판만 덩그러니 남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미가 흙을 물어와 하루종일 둑방을 쌓듯

매일 시를 물어와 시를 올리고 시를 먹고 마시며

누군가는 시를 짓고 어딘가로 씨앗을 옮겨주리라.

씨앗을 옮기는 것, 그게 극치인 거다.